서방 제재 강화에 "이란, 북한도 못막은 제재…푸틴 행보 안바뀔 것"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대 러시아 제재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제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멈춰 세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과거 이란, 베네수엘라 등을 대상으로 한 서방의 경제 제재들도 결국 독재자의 행보를 바꾸지는 못했다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제재가 푸틴 대통령을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게 할 것인가. 역사에 살펴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강력한 제재를 시행해도 러시아가 전쟁을 중단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도했다. 최근 일련의 경제 제재들이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고 우크라이나 침공 비용을 높일 수는 있으나, 러시아의 철군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WSJ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러한 제재가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특히 행동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고 전했다. 북한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에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리비아를 대상으로 한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제재는 1980년대초부터 약 20년간 이어졌지만 이 또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무아마르 카다피는 이후에도 10년 가까이 더 권력을 유지하다 '아랍의 봄' 혁명으로 축출됐다. 쿠바를 대상으로 60년에 걸친 미국의 무역 금수조치도 쿠바 정권을 몰아내는 데 실패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간의 제재를 검토해온 로버트 파페 시카고대 정치학자는 정권 교체, 타국에 대한 군사 행동을 번복하는 것 등을 목표로 할 경우, 군사적 위협이나 행동이 없는 한 제재의 효과는 5%의 시간 정도에 그친다고 밝혔다.


더욱이 과거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 중앙은행 제재는 물론, 현재 러시아에 시행하지 않은 에너지 제재 카드도 포함돼있었다. 하지만 이란의 그 결과 이란 경제가 타격을 입긴 했어도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WSJ 외에 주요 외신들 역시 이 같은 점에 주목하며 "현 제재로 러시아의 고립이 확연하지만, 에너지 부문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무역 흑자"라고 분석했다.


미 재무부 출신인 K2 인터그리티의 대니 글레이저는 "서방의 제재가 푸틴의 군사적 목표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며 "관건은 러시아가 얼마나 고통을 감내할 의향이 있는지"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의 클레멘스 그래이프 이코노시스트는 "러시아가 석유, 가스 판매를 통해 돈을 계속 벌어 들인다면, (제재로 인한) 즉각적 위기는 6~9개월 내 사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베네수엘라 등의 사례처럼 대러 제재가 중러 관계를 가깝게 만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중국의 이란산 원유 구매 역시 사상 최고 규모를 기록 중이다. 컨설팅 기업 테네오는 "제재 조치가 장기화 할 경우 푸틴 대통령의 입지를 흔들 수 있다"면서도 러시아의 반발이 강화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주요 외신들은 러시아의 경우 이란, 베네수엘라, 북한 등보다 경제 규모가 크다는 점을 짚었다. 세계 12위 규모의 강대국을 상대로 한 제재는 역사적으로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제재 강도와 동참 국가들의 숫자도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제재 만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되돌릴 순 없지만 러시아의 미래 역내 세력의 확장을 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미국은 이날 러시아 신흥재벌인 올리가르히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억만장자 알리셰르 우스마노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 등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며 금융시스템에서도 차단된다.


이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전쟁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파악되는 신흥 재벌들의 ‘돈줄’을 끊음으로써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조치다. 이를 통해 지지세력 내 분열까지 꾀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전 세계 정부와 협력해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요트, 호화아파트, 자산 등 부당 이익을 파악하고 동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우스마노프가 소유한 6억달러 상당의 초호화요트를 함부르크에서 압류했고, 영국 역시 우스마노프 등을 대상으로 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공개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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