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대중문화 속에서 삶의 비전과 희망을 제시했던 ‘문화 대통령’을 테마로 다룬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적인 아이콘인 가수 서태지에게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붙기까지의 과정을 분석하고, 한정원 칼럼니스트는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으로 손꼽힌 세계 최고의 프리마돈나 조수미를 조명한다. 안진용 기자는 수평적 리더십을 통해 출연자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예능 대통령’ 유재석의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언급한다. 전철희 평론가는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놀 줄 아는 이들’의 대통령이 된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를 다룬다. 송석주 영화평론가는 ‘킹메이커’의 영화적 의미와 사회·문화적 의미를 살피며 참신한 해석을 선사한다.
서태지를 지지했던 X세대들은 문화와 정치, 경제, 사회와의 편차상쇄의 순환을 주조할 줄 알기에, 직장을 예로 들면 보고서에 능한 ‘칼’ 간부와 전문경영자가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얘기하는 동료를 선호한다. 서태지세대이자 문화세대라서 그렇다. 그들은 문화가 아니면 통할 수 없는 시대와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 모든 것을 압축하는 하나의 용어가 ‘문화 대통령’이다. 거기엔 문화부문에서 나온 문화 대통령이면 그만이겠지만 정치사회부문의 대통령도 문화, 문화적 대통령이기를 바라는 간구懇求가 함의되어있다. -‘서태지, 문화 대통령의 의미’(음악평론가 임진모) 중에서, <37쪽>
아주 오래전,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그녀의 명성은 역으로 한국으로 전해졌다. 당시 그녀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2막에 나오는 ‘밤의 여왕’ 역을 도맡다시피 했다.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두 곡은 소프라노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불러보고 싶은, 그렇다고 아무나 부를 수 없는 고난도 테크닉이 필요한 노래이다. 서양인들에 비해 가녀린 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불꽃 같은 고음과 맑고 화려한 콜로라투라 목소리로 늘 무대를 압도하였다. 정통 벨칸토 테크닉으로 부르는 ‘밤의 여왕’은 단연코 그러한 압도적 순간의 최전선에 있다. 명 지휘자였던 카라얀은 그녀 목소리를 일컬어 ‘신이 내려준 목소리’라 찬사를 보냈으며 주빈 메타 역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물세 살의 프리마돈나, 조수미’(클래식 칼럼니스트 한정원) 중에서, <38~40쪽>
'뽀로로'는 완결된 서사적 감흥을 주기보다는, 캐릭터들이 흥겹게 놀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일에만 의식적으로 집중한다. 이것은 '뽀로로'가 아이들에게만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애지중지하면서 아이를 키운다. 그래서 웬만한 아이들은 집에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유로운 유희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무한경쟁으로 뛰어들게 된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징어 게임을 기획한 흑막들이 말하듯,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순수한 유희’란 불가능하다. 물론 삶이 힘겨울 때 자신만의 유희에만 몰입하는 성인이 존재할 수 있고, 세속적 성공을 포기한 채 적당히 놀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성인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삶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지,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은 아니다. 무념무상으로 끊임없는 유희를 감행한 '뽀로로'의 캐릭터들이 아직 사회화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만 공감과 재미를 줄 수 있는 까닭이다. -‘놀 줄 아는 이들의 대통령-'뽀롱뽀롱 뽀로로'’(문학평론가 전철희) 중에서, <53쪽>
‘쿨투라cultura’ 통권 제93호(2022년 3월호) | ‘쿨투라’ 편집진 | 작가 | 144쪽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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