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발언 중인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팻말을 든 활동가들 뒤 벽면에 부착된 선전물이 훼손돼있다./박현주 기자 phj0325@
원본보기 아이콘[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20일째 지하철 승·하차 지연 시위를 전개하며 이동권 보장을 외쳐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 방식이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장애인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말 한마디가 이끈 변화다.
전장연은 22일 오전 7시30분부터 서울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에서 시작해 경복궁역으로 이동한 뒤 하차하는 방식으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촉구 시위 개최했다. 하지만 시민들과 가장 큰 마찰을 빚었던 승·하차 지연 시위는 생략되면서 지하철은 정상 운영됐다.
앞서 전장연은 이동권 문제를 부각하기 위한 의도로 고의로 열차를 지연시키는 승·하차 시위를 진행해왔다. 바쁜 아침 출근길 시위가 반복되다 보니 시민들은 이들의 절박함을 이해한다면서도 불편을 토로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을 향햔 불만을 혐오 공격 등 폭력으로 거세게 표현했다. 전장연 측은 온·오프라인에서 모욕적인 인터넷 댓글, 폭언과 협박 등을 당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장연 입장에서는 이동권 보장이 절실한 만큼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따라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장연은 앞으로 지하철을 고의로 지연하는 식의 시위는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어제 TV토론에 심상정 후보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언급했다"며 "지하철 출근길 시위는 계속하지만 최대한 시민들과 마찰을 줄일 수 있도록 승·하차 지연 시위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1일 심 후보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3차 대선후보 4자 토론 1분 마무리 발언에서 전장연 시위에 공감하면서 "이동권 예산 확보뿐 아니라 장애인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장애인 선진국을 만들겠다"며 "시위를 이제 거두시라"고 발언한 바 있다. 박 대표는 심 후보의 언급에 대해 "장애인 관련 의제가 토론장에서 언급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정치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하니 시민과 더 이상 극심하게 부딪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들을 향한 심 후보의 메시지가 갈등 해결의 물꼬를 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연이은 네거티브 공방전으로 '역대급 대선'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일부 후보는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선이 다가오자 여야에서도 "히틀러", "파시스트", "무당·주술 공화국" 등 격한 언어를 주고 받으며 발언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인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언어 표현에 신중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19년 정치인의 혐오표현 예방 대응에 관한 결정문에서 "정치권이 혐오표현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며 정치인은 사회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그로 인한 해악도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정치인은 정치영역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다양성과 인권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진전시킬 책무가 있다"며 "혐오표현을 제어하고 이를 예방하고 대응할 사회적 책임이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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