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무의미한 상호작용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글로벌 기업 주요 임원들이 코로나19 이후 든 생각은 이러합니다. 상호작용, 즉 여러명이 모여 논의하는 회의를 말하는 건데요. 가끔 그런 날이 있죠? 출근 직후부터 퇴근 직전까지 회의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날 말이에요. 글로벌 경영컨설팅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임원 10명 중 8명은 불필요한 회의가 많아 쓸데없이 시간을 쓰고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힘들어 회의 구조나 빈도를 바꾸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의의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의 고민이겠죠.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국내외 일부 기업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없는 날'을 지정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석자 모두의 시간을 맞춰야하는 회의 대신 개인이 수행하는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회의를 미리 준비하고 개인 스케쥴도 조정이 가능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측면에서도 각광 받아온 방법입니다. 코로나19로 현장근무와 재택근무 등 업무 환경이 복잡해진 지금 회의와 개인 업무시간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다시 들여다 볼 만한 내용이죠.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경영대학원이 발생하는 경영저널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는 지난달 '회의 없는 날의 놀라운 효과'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다수의 기업들이 회의 없는 날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분석을 한 보고서였죠. 50개 이상의 국가에서 각 1000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지난 12개월간 회의 없는 날을 도입한 76개 기업을 조사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결과 절반 가량인 47%는 일주일에 2일 회의 없는 날을 도입, 전체 회의 수가 40% 줄어들었으며 뒤이어 35%는 3일, 11%는 4일을 회의 없는 날로 지정했고 7%는 회의 자체를 없앴어요. 이를 들여다보니 회의 없는 날이 주 2일이었던 기업의 직원들은 생산성이 71% 높아지고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5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주일에 3일을 회의 없는 날로 지정한 곳은 회의가 기존에 비해 60% 줄어드는 대신 협력 정도는 5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회의 대신 개별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 소통을 이어나갔다는 것이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의 분석인데요. 한곳에 모여있는다고 무조건 협력 정도가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의미겠죠? 또 회의 없는 날이 많을수록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최대 75%까지 줄었고 직원 개인의 자율성은 최대 88%까지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회사 내에서 회의 자체를 모두 없애자고 할 순 없겠죠? 회사 업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직원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며 의견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 조사에서 생산성 증가폭을 살펴보면 회의 없는 날이 주 4일일 때는 74%까지 증가하지만 5일일 때는 오히려 64%로 증가폭이 줄어들어요. 업무에 대한 만족감도 회의 없는 날이 주 3일일 때 65%로 최대를 기록한 뒤 주 4일 62%, 주 5일 42%로 급격히 줄어듭니다.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는 회의 없는 날은 주당 3일이 최적이라면서 사회적 연결성 유지와 주간 일정 관리 차원에서 2일도 적절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 저널은 "재택근무 환경에서는 직원 개인의 고립 리스크가 예외적으로 높아진다"면서 "관리자가 정교하게 사회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무작정 회의를 없애기보다는 서로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모임도 가끔은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네요.
다만 직장인들 대부분은 회의를 할거면 '제대로' 하자고 얘기합니다. 논의해야 할 내용을 압축적으로 나누고 불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식의 회의는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죠. 맥킨지는 회의 시간을 30분 내로 제한하는 등 회의 효율성을 높인 넷플릭스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단순히 정보 공유를 위한 회의는 이메일 등 다른 방법을 활용하고 서로 논의를 주고 받아야하는 내용도 사전에 미리 자료를 제공한 뒤 프레젠테이션이 아닌 질의응답(Q&A)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해 회의 횟수를 크게 줄이고 만족도는 높였다는 것이죠.
사실 회의 없는 날 제도는 국내 기업들에도 다수 도입 됐습니다. 소위 '워라밸'이 강조되던 수년 전 조직관리 제도의 일환으로 들어온 것이었는데요. 사실 지금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와 현장근무가 복합적으로 이뤄지면서 더 이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한데요. 결국 회의는 각 회사의 사정에 맞춰 적절한 방법을 찾아나가야겠죠. 형식적인 방법 보다는 실질적으로 직원들의 생산성과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