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10년째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가족과 떨어진 채 혼자 모시고 있다. 갈수록 흉폭해지고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극단적인 생각이 든다. 제발 치료법이 언제 나올지 알려달라."(국내 치매 환자 가족 A씨)
‘가장 잔인한 이별’이라는 별명을 가진 치매의 맨 얼굴이다. 치매는 각종 질환으로 인해 뇌세포가 죽어가면서 퇴행성 행동을 보이는 증상을 말한다.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의 대부분(74.9%)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흔하다. 이 밖에 뇌졸중 등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파킨슨병), 2차 치매(각종 질환의 후유증)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정복'이 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원인 물질 제거 및 증상을 개선할 수 있는 ‘근원적 치료제’가 세계 각국에서 본격 연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10~20년내 획기적인 진전을 예상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과 정확한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약물 치료법들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하에 증상 개선 목적으로 사용 중이다. 1993년 FDA 허가를 받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ACEI)가 대표적이다. 정상인의 경우 뇌의 신경세포에서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적절히 분비돼 기억력이 유지되고 학습을 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에서는 이 물질의 합성·대사가 현저히 감소돼 있다. 이에 따라 도네페질(Donepezil), 리바스티그민(Rivastigmine), 갈란타민(Galantamine) 등 3가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 효과를 가진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다. 초·중기에 사용할 경우 6~24개월가량 진행을 늦출 수 있는 등 일부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통계 등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글루타메이트(glutamate)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신경세포 손상·사멸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설에 따라 이를 억제할 수 있는 NMDA 수용체 길항제인 메만틴(memantine)도 사용된다. 경증보다는 중등도·중증 환자에게서 신경세포의 사멸을 막고, 남아 있는 신경세포의 생리적 기능을 복원시켜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타 보조 약물로 항산화제도 쓰이지만 효능 여부는 논란이다.
최근에는 의·과학의 진전에 따라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 물질과 작용 기전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단계다. 우선 베타-아밀로이드, 타우 단백질이 신경반(neuritic plaque) 혹은 신경섬유다발(neurofibrillary tangle) 형태로 침착되면서 신경세포의 사멸과 신경 퇴행을 유발해 인지 기능 감소로 이어진다는 가설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혀 치료 물질 개발의 타깃이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26개의 후보물질(지난해 1월 기준)을 대상으로 152건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 중 3상까지 간 후보물질은 28개로 41건의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2상까지 간 후보물질도 74개(임상시험 87건)가 있고, 1상 단계에선 24개 후보물질(임상시험 24건)이 개발 중이다. 전체 126개 후보물질 중 근원적 치료제, 즉 치매의 진행을 느리게 하거나 멈추게 하는 등 질환병리 자체를 개선하는 치료제가 104개로 82.5%를 차지한다. 이 중 16개(15.4%)가 베타-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11개(10.6%)는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FDA의 승인을 받은 아두카누맙(aducanumab·상품명 아두헬름)도 베타-아밀로이드에 대한 항체로 개발됐다. 즉 베타-아밀로이드 침착물을 제거해 인지 기능 개선 효과를 보이도록 설계됐다.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이 아닌 ‘근원적 치료’를 목적으로 한 치료 약물 중 FDA의 승인을 최초로 받으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러나 치료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2019년 34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실험에서 베타-아밀로이드 침착물 감소 효과는 측정됐지만 인지 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해 임상 3상에서 중단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량을 투여받은 일부 환자군에서 효과가 나타나면서 FDA가 시판 후 연구로 임상적 이점을 입증하라는 조건을 달고 승인한 상태다. 연간 6000만원가량의 높은 투약비가 논란이 되자 개발사인 미국 바이오젠은 올해 초 이를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의약학단 관계자는 "아두카누맙은 베타-아밀로이드 침착 가설이 알츠하이머 질환의 정확한 원인인지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점과 고용량 사용시 일시적인 뇌부종으로 인한 두통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점, 높은 가격 등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아두카누맙의 승인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근원적 치료제 개발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드러난 한계와 과제도 만만치 않다. 기존 치매의 원인 물질로 알려져 있던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데 성공을 했음에도 인지 기능 개선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는 점은 치매 연구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는 평가다.
이민재 서울대 의대 교수는 "마우스(쥐) 모델을 이용한 기존의 연구가 실제 인체를 대상으로 해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직접적인 신약 개발, 유효한 임상적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선 새로운 연구 방법론의 도입과 함께 인체 기반 연구 기법의 활발한 사용이 필수"라며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작용에 대한 생화학적 연구나 환자 유래 세포의 활용, 시퀀싱이나 대규모 역학연구를 바탕으로 한 빅데이터의 면밀한 분석, 실제 인체 연구에 사용될 차세대 이미징 방법론 등이 치매 치료제 개발 연구에 핵심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서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치매 연구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 교수는 "연구자들의 아이디어나 시험관 내에서 발견한 치료 타깃이 실제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는 데 다른 연구에 비해 소요되는 리소스와 시간이 많이 필요해 쉽게 치료 타깃 테스트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면서 "치매 연구 중앙 센터와 같은 기관이 있어 지원해 준다면 치매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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