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기존 한국 사회에서 살인 범죄는 15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있었다. 공소시효가 존재한다는 의미는 15년이 되면 수사를 중단한다는 것과 같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항복 선언이다. 하지만 잔혹범죄 발생률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살인 범죄, 미성년에 대한 성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프로파일러의 공이 컸다.
국내에 프로파일러가 처음 등장한 건 2000년이다. 그 전엔 인과관계나 범행 동기가 비교적 뚜렷했으나 화성 연쇄살인(1989), 지존파 사건(1994), 막가파 사건(1996) 등 불특정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프로파일링 수사 기법이 등장하게 됐다. 1호 프로파일러이자 책 ‘프로파일링 케이스 스터디’의 저자인 권일용은 “범죄자들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유사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유사한 성격 특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프로파일러는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연쇄살인범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경제적 무력감과 사회가 불평등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불공정 의식, 이와 같은 사회적인 상황으로 자신이 불행해진 것이라는 투사적 사고, 사회적 장벽과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성장기의 범죄 피해, 원만하지 못했던 가족관계” 등이다.
연쇄살인범을 단순히 사이코패스로 간주하는 건 오산이다. 사이코패스는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사고의 각성이 굉장히 높아져” 있기에 “늘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을 통제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지 조종하려는 생각을 갖고”있는 반면 연쇄살인범은 “단지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비열하고 오만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춘재, 정남규, 유영철은 대표적 연쇄살인범 케이스다.
성범죄는 “사소한 성적 착취물을 보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에서 아동 성 착취물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10년 이상의 처벌을 하는 이유다. 저자가 만난 성범죄자들은 공통적으로 성 착취물 영상을 과도하게 많이 소지했고, 일상에서도 늘 성적인 환상을 추구했다. 이들은 “성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만족감을 추구하기보다는 피해자의 삶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더 심리적인 만족감을 얻는 특징”을 지녔다.
묻지마 범죄자의 공통된 사고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자신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동일선상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여긴다. 사회구성원들로부터 단절됐다고 느끼기에 “누군가를 공격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 상태”을 지닌다. 언론을 통해 얼굴이 공개됐을 때 “나도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정신장애와 관련해선 조현병이 대표적이다. 대중에 알려진 정신장애 가해자 다수가 조현병이기에 사람들은 조현병에 관한 두려움이 짙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신장애에 따른 강력범죄는 1%가 채 되지 않는다. 조현병 환자들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다는 통념도 잘못됐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정상인과 특별하게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원활하게 생활”할 수 있다. 과거 정신분열병이란 명칭이 현을 조율하다라는 ‘조현’병으로 개명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발생률이 외국보다 높은 건 사실인데, 이는 “정신장애라는 낙인이 붙는 일이 두려워 (...) 문제가 발생된 후에 전문가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이유에서 “정신장애에 대한 오해와 낙인은 반드시 잘 정리돼야 한다. 단순히 정신장애 증상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본질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치료가 개입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변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