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의 미래당겨보기]민주주의의 기원, ‘자치 헌장’ 다시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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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준형 기자]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 건국한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정착은 쉽지 않았다. 정당정치와 선거제도는 정치적 입장 차이를 해소하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다. 정치인의 무능과 정치적 혼란의 틈타 강력한 힘을 가진 군부가 권력을 차지하기도 했다.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들이 여러 민주국가에서 등장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건 물론 전쟁과 대량 학살로 인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고통 속에서 다시 민주적 제도를 회복한 국가들도 늘었다. 우리나라도 독재 정부에서 민주 정부와 산업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여전히 불안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폭력적으로 의회를 점거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정치적 이슈를 둘러싼 대립을 두고 정치 세력과 국민은 서로가 가짜 뉴스에 속고 있다며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거와 정치제도를 부정하고 적대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국제적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맞서 중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실패했다며 중국식 ‘인민 민주주의’로 맞불을 놨다. 중국은 민주주의가 전 인류의 공통 가치지만 보편적인 모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민이 주인이 되는 게 중국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핵심이며 인민이 원하는 걸 해결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금권정치화됐고 1인1표 제도는 소수 엘리트 정치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지적한 ‘거부정치(상대방의 정책과 주장을 무조건 거부하는 극단적 당파 정치)’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명한 정의는 링컨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통치"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인민을 대신해 국민을 위한 통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민주주의가 갖춰야 할 3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국민에 의한’ 선거라는 절차적 제도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이고 중국은 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민주주의 3요소 중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족한 건 ‘국민의 통치’다. 모든 국가의 헌법이 명시하고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실질적으로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국민의 통치’에 대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모호할 수 있는 ‘국민의 통치’의 의미를 민주주의 기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시작은 미국이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국의 헌법은 민주주의의 표준이 됐다. 1787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건국헌법회의가 채택한 헌법은 배심원에 의한 공명한 재판,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 의한 거버넌스, 입법·사법·행정 등 3권 분립의 원칙을 담고 있다. 특히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 의한 통치와 견제, 균형이라는 3권 분립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왕이나 영주가 국가의 주인이고 계급을 세속하던 시대의 상식을 거부하고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며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건 인류의 위대한 승리다. 이 같은 제도를 기반으로 미국은 여러 환경적 이점 속에서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의 선조들은 어떻게 이런 제도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아메리카 대륙은 당시 세계 최강국인 영국의 식민지로 선언됐지만 일부 지역에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어 사실상 주인 없는 광대한 초원이었다. 종교적 박해와 굶주림을 피해 이주해온 개척자들은 마을을 만들어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지켰다. 또한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지도자를 뽑고 스스로를 통치하는 최소한의 규칙과 규율을 만들어야 했다. 일례로 코네티컷에 정착한 주민들은 1638년 모든 자유인이 치안판사 선출에 참여하고 비밀 투표용지 사용을 포함해 개인의 권리와 자치 정부의 권한 등을 규정하는 차터(헌장)를 만들었다. 이 자치헌장은 영국 왕의 승인을 받았지만 영국 왕은 1687년 식민지에 총통을 임명하고 헌장을 압류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이 사건은 식민지 주민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미국 독립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펜실베이니아 지역에 정착한 윌리엄 펜은 1677년 퀘이커 교도 200명을 이끌고 자유헌장을 작성했다. 이 헌장은 미국 독립헌법의 기초가 된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 의한 거버넌스, 3권 분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무력을 거부한 펜은 원주민과의 갈등을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했고 이는 관용과 이해, 자제의 문화를 만들었다. 자유헌장에 의해 통치되는 펜실베이니아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개신교도의 이민을 받아들이며 경제적으로 가장 번성한 지역이 됐다. 이에 다른 주도 자유헌장을 모방하는 헌장을 채택했다. 펜의 헌장은 주민 200여명의 자치헌장에서 각 주의 헌장으로 확대됐다. 1787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건국헌법회의에서는 미국 헌법의 기초로 채택되었다. 불과 약 100년 만에 종이 한 장의 헌장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초석을 쌓은 셈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인들이 모인 공동체의 자율적 자치를 위한 해결책으로 발명됐다. 주민의 거버넌스,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한 자치와 자율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민주주의와 동일시하지만 이는 인권 정신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이 공동체를 이뤄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한 제도다. 이때 서로 다른 개인에 대한 상호 용인과 이해, 자제가 작동할 수 있다. 배제와 부정은 스스로를 다스리는 자치, 자율과 양립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치와 자율, 상호 용인과 자제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명호 미래학회 부회장. [사진 = 아시아경제 DB]

이명호 미래학회 부회장. [사진 = 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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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사)미래학회 부회장




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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