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 ‘살아냄’에서 의료윤리적 통찰이 나온다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의료윤리학자인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논쟁적이며 각자의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료 이슈 8가지를 꼽는다. 연명의료, 임신중절, 치매 돌봄, 감염병 그리고 유전자 조작, 건강세, 의료 개인정보, 환자/보호자-의료인의 관계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다. 실제 사례와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과학적·철학적·경제적 배경과 그에 적용되는 이론을 살핀다. 이를 통해 독자가 의료윤리를 ‘누군가의 문제’에서 ‘나의 문제’로 이해하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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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라는 것은 반드시 현실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지닌다. 의료윤리는 특히 그렇다.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논의는 의료윤리에서 무의미하다. 의료윤리는 이론적 논의를 현실에 적용해 현실 속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어야 한다.(그래서 응용윤리의 대표 분야로 꼽힌다.) 그런데 이때 현실의 문제를 푼다는 것은 그 시시비비를 가려 일도양단의 결정을 내리는 일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결정은 법의 영역에 맡겨두자. 의료윤리는 다만, 현실의 문제를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 그 ‘살아냄’에서 의료윤리적 통찰이 나온다. <30쪽>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안락사 관련 이론 또한 그저 이론일 뿐 환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는 거리가 있다. 환자의 고통을 줄일 방법을 알아내려면 현실을 살펴야 하고, 환자의 필요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 일은 사회학적 조사로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내 앞의 환자를 이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환자는 환자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허물어져가는 삶을 바로잡아야 하며 새로운 관계에 적응해야 한다. 질환의 폭풍 앞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환자야말로 스스로를 이해할 방법을 찾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53쪽>


상대방의 필요와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상황을 전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 없이 추상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리거나 전달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도 없고 상대방을 위한 결정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당사자의 필요에 맞게 의사결정이 지원되고 실제로 그런 결정이 내려지려면 그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해야만 한다. 이해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면 그것은 의사결정 지원이 아니라 그저 대리 의사결정에 불과하고, 타인에 의해 당사자의 문제가 좌우되는 일이 될 뿐이다. 우리가 치매 환자 지원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 지향점이 환자의 결정을 돕는 데 있다면 우선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삶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131쪽>


(김준혁 지음/휴머니스트)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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