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개발기구 재정 기여금 규모 면에서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섰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재정 기여금 규모가 클수록 의결권 비중도 높아지는만큼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김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세계개발센터(CDG)는 지난 18일 세계은행, IMF, 국제금융협회(IFC) 등 76개 국제 기구의 국가별 재정 기여금 규모를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분석 결과 중국의 기여금 총액은 660억달러를 넘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에 걸쳐 이들 국제기구에 대한 기여금 규모를 4배 이상으로 크게 늘렸다. 일정 부분 중국의 경제 규모가 급속히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기여금 규모도 급증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중국이 자발적으로 기여금 규모를 늘린 기관도 적지 않다.
국제개발협회(IDA)는 중국이 기여금 규모를 크게 늘린 기관이다. IDA에서 중국의 기여금 규모는 2012년 20위였으나 2016년 17위, 2018년 11위, 현재 6위로 높아졌다. 중국의 순위가 오르는 동안 IDA의 재정 여력도 500억달러에서 820억달러로 늘었다.
독특한 점은 중국이 국제기구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지만 동시에 이들 국제기구로부터 여전히 많은 금융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공여국인 동시에 차입국인 셈이다.
CDG는 "중국은 중요한 재정 기여국으로서, 주주로서, 지원 수혜국으로서, 또 상업 파트너로서 유례없이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유엔 산하 기구에 대한 중국의 2019년 자발적 기여금 규모는 2010년에 비해 세 배로 늘어 상대적으로 덜 늘었다. 중국은 유엔 산하 기구 중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세계식량계획(WFP), 유니세프(UNICEF)에 대한 기여금 규모를 자발적으로 크게 늘렸다.하지만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 등 전체적인 유엔 산하 기구에 대한 중국의 기여금 규모는 세계 5위에 그친다.
중국의 기여금 규모가 큰 이유는 중국이 주도해 설립한 국제 개발 은행의 기여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브릭스 국가들과 함께 2014년 신개발은행(NDB), 2015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주도했다. 중국의 NDB에 대한 의결권 비율은 2017년과 2020년 보고서에서 모두 20%로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AIIB 의결권 비율은 2016년 26.1%에서 올해 26.6%로 높아졌다.
보고서의 공동 저자 중 한 스캇 모리스 선임 펠로우는 "중국이 저개발국가를 돕기 위한 일대일로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에 대한 입지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해가면서 공여 규모를 늘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에 미국은 기존 국제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모리슨 펠로우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협으로 보는 견해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중국이 기존 시스템 밖이 아닌 안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더 좋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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