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더 이상 이 조직에서 있기 힘들다. 그만 좀 끝내고 싶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인천경찰청 소속 A 경사(33)가 남긴 유서에는 그간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22일 아시아경제가 확인한 해당 유서는 총 다섯 장으로 3장은 대부분 함께 일하던 팀원들에 대한 원망과 그동안 힘들었던 상황에 대한 토로가 담겼다. 1장은 가족사와 관련해 정리할 일 등의 내용이 들어갔고, 나머지 1장은 가족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이 유서를 남기고 지난 16일 오전 8시45분께 경기 시흥시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 경사는 유서를 통해 업무 처리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함께 일하던 팀원들의 실명도 거론됐다. 그는 올해 부서 이동 이후 이전 팀에서 맡았던 사건을 그대로 가져 왔는데 팀원들이 이를 도와주기는커녕 대충 끝내라는 식으로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원래 부서에서 A경사는 금괴 밀수와 관련된 사건을 수사해왔다. 그러나 이를 혼자 떠맡다시피 했고 그 와중에 사건이 커지면서 일이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새로 온 팀에서의 업무도 있어 부담은 더 커졌다. 가족들에게도 이를 토로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급기야 우울증 판정까지 받았다고 유가족들은 주장한다.
유서에는 A 경사의 상관이 A 경사가 맡은 사건의 범행에 이용된 금괴 개수를 줄인 뒤 대충 보고한 뒤 마무리하자고 종용, 사건을 축소했다는 의혹도 담겼다. 당초 파악한 범죄 사실의 규모가 커져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으나 이를 "쓸데없는 사건"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팀원들의 업무 태만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다. A 경사는 평소 팀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외근을 나간다고 보고한 뒤 스크린골프를 치러 가거나 개인 업무를 보러 다녔다고 유서에 썼다. 심지어 구속영장 신청과 관련한 업무를 하는 데도 사우나에 가는 바람에 결재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도 했다. 일부 팀원이 매일같이 지각을 하거나 코로나19 상황에서 문을 닫고 술을 먹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던 도중 A 경사는 병가를 신청했다. 당시 4살 난 아들이 직장 내 어린이집을 다니는 바람에 휴가 중에도 A 경사는 근무지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를 목격한 동료들이 "A 경사가 일은 안하고 놀러 다닌다"는 식으로 자신을 비난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승진시험을 준비하려고 휴가를 냈다는 소문까지 퍼지며 괴로워했다고 유가족은 주장하고 있다.
A 경사의 유가족들은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과 함께 제대로 된 수사와 혐의점이 밝혀질 경우 관련자들의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만간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도 검토 중이다.
경찰은 유서에 언급된 관련자들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언급된 이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유서에 적시된 사건 축소 의혹이나 업무 태만 등의 주장도 확인할 예정이다. 앞서 인천경찰청은 "A 경사가 평소 다른 직원들과 원만하게 지냈고 직장 내 괴롭힘이나 따돌림 등을 당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해 20여명의 경찰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4명, 올해는 지난 8월까지 1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우울증을 앓는 경찰관은 2019년 1000명(1091명)을 돌파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는 경찰관은 매년 30~40여명,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경찰관은 지난해만 214명에 달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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