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혐오로 얼룩진 '오징어게임', 웃으며 볼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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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너 알지? 여자도 요즘 군대 많이 가는 거.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남자 여자가 다 똑같이 평등한 세상이야."


도박 중독자 기훈(이정재)은 공짜로 얻은 선물을 딸에게 건넨다. 포장지를 뜯자 모습을 드러낸 건 장난감 권총. 당황한 딸에게 그는 황급히 둘러댄다. 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1화에서 나온 대사다. 최근 불거진 여러 논란과 겹쳐지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여성과 외국인, 노인을 향한 비뚤어진 인식이 '2021년 공개된 작품 같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다.

'오징어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여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다. '도가니'(2011), '남한산성'(2017) 등을 만든 황동혁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제작 역시 황 감독의 싸이런픽쳐스에서 담당했다. 배우 이정재가 주인공 기훈으로 분해 중심을 잡고 박해수, 오영수, 위하준 등이 출연한다.


어릴 적 동네에서 어린이들이 모여 즐기던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을 삽입해 한국적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공개 직후, 한국적 코드를 서바이벌 형식으로 풀어낸 설정이 흥미롭다는 반응과 신파적 설정이 다소 지루하다는 반응이 이어지며 호불호가 나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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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형식과 진행자들의 옷, VIP가 게임을 관람하는 장면 등 일부 설정이 다수 외국 영화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표절 의혹'에 휩싸인 데 이어 외국인노동자, 노인 묘사 역시 왜곡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가장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건 연출자의 젠더 감수성 부재다.

배역의 이름조차 시대착오적인 한미녀(김주령 분)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생존을 위해 남성을 유혹하고, 자신의 육체를 도구로 활용하는 여성의 모습은 철저히 남성 시각을 반영한 그릇된 판타지다. 이러한 캐릭터는 여성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며 여성 시청자, 관객이 등 돌린 지 오래다.


특히 한미녀가 자신의 육체에 담배를 숨기는 장면은 온라인상에서 "불쾌해서 못 보겠다"는 지적마저 나오며 논란이 되고 있다. 한미녀를 향해 가해지는 남성 캐릭터들의 성희롱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묘사되는 점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마지막까지 이렇다 할 반전도, 활약도 없이 남성들의 희롱에 할 수 있는 건 욕설밖에 없는 캐릭터에 그친다.


남성을 이용하는 여성. 그러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각종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정당화시키려는 듯한 연출은 감독의 왜곡된 젠더 인식을 그대로 노출하고 만다.


한미녀와 대립하는 남성 캐릭터 덕수(허성태 분)의 대사와 행동은 어느 하나 꼽기 어려울 만큼 폭력적이다. 시종일관 남성에게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을 가하는 여성 혐오로 얼룩져 있다. 심지어 탈북자 여성 캐릭터 새벽(정호연 분)을 향해 "네가 뭐, 유관순이냐? 그럼 나가서 태극기라도 흔들든가. 너 북한 X니까 인공기 흔들어야지"라는 대사는 유관순 열사를 깎아내린 것이 아니냐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여성을 묘사하며 '약자'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놓은 설정과 여성의 시체 훼손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것도 모자라 집단 강간을 연상시키는 불필요한 대사와 연출은 경악스러울 정도다.


극 후반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들이 가구처럼 놓여 백인 남성들의 수단으로 쓰이는 장면이 논란에 방점을 찍는다. 이처럼 '오징어게임'은 여성을 그저 성적 대상화, 도구화 한 장면, 대사로 범벅된 얼룩져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오래전 공개돼 큰 인기를 얻은 외국 콘텐츠 다수는 오래전 소비된 낡은 것이다. 이를 과하게 인식한 탓일까. 자극을 위한 자극을 좇는 과정에서 남성 연출자가 여성을 성적 도구로 소비하며 자극적 요소를 억지로 넣으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성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비뚤어진 젠더 인식 마저 의심스럽다. 황동혁 감독의 훌륭한 전작이 무색해질 만큼 아쉬운 부분이다.


'오징어게임'의 왜곡된 시선은 이뿐 아니다. 어수룩한 외국인 노동자, 노인 묘사도 아쉽다. 게임의 진행자는 "게임을 하는 동안 모두가 평등하다"라고 말하지만, 평등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여성, 노인은 힘이 세지 않아 불리하다는 식의 1차원적 묘사를 노골적으로 해놓고 일부 남성 캐릭터는 묘안을 내 생존을 이어간다. 이러한 설정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에 이러한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진행된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게임'은 2008년부터 구상한 작품이다. 2009년 대본을 완성했는데 1년 정도 준비하다가 다시 서랍 속에 넣어놨다"며 오랜 준비를 거쳐 세상에 나온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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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감독은 일각에서 제기된 표절 의혹을 의식한 듯 "영화나 만화가 공개된 것도 그 이후로 알고 있어서 우연적으로 유사한 것이지 누가 따라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제가 원조"라고 했다. 무려 10년간이나 시나리오를 만들어왔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문제 요소는 제거하고 캐릭터는 유연하게 가져갔어야 맞다.


연출자가 '풍자'를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를 극에 담고자 했다면, 그 메시지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약자라 규정지은 소수의 희생 없이 다수를 이해시키는 올바른 풍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혐오'가 아닌 '풍자'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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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감독의 연출만으로 세상에 나올 수 없다. 물론 시나리오와 연출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후반 작업 과정에서 여러 제작, 배급 관계자의 손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오징어게임'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터. 미리 보고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더욱 안타깝다.


배우들은 제 몫을 다했다. 이정재의 연기 도전이 인상적이고 이병헌, 위하준은 강렬한 존재감으로 극을 꽉 채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호연을 비롯해 일부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해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혐오의 대상이 된 이들이 '오징어게임'을 웃으며 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오락적 요소로 소비되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생존과 직결된 공포로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까.


사진=넷플릭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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