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프런티어] 배순민 "모두 잘할순 없다…약점 보완보다 먼저 강점 살려라"

2021 아시아여성리더스포럼 10기 멘토
'KT 최연소 임원' 배순민 KT융합기술원 AI2XL연구소장 인터뷰

"불모지 길 닦는 것 좋아해" 도전 즐겨
소통·협업 강조…작은 성취마다 셀프 칭찬

배순민 KT융합기술원 AI2XL연구소 소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본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배순민 KT융합기술원 AI2XL연구소 소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본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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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불모지에서 삽질하고 길 닦는 걸 좋아한다." 단정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꺼낸 말은 참 의외면서도 한편 고개가 끄덕여졌다. KT 최연소 임원이자 국내 톱티어 인공지능(AI) 전문가인 배순민 KT 융합기술원 AI2XL연구소장(41). 그가 걸어온 길은 ‘모범생’ 그 자체면서도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배 소장은 "큰 성취만 원하면 오히려 지친다"고 입을 뗐다. 과학고-카이스트(KAIST)-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에게도 삶이란 "항상 실패하고 가끔 성공하는 것"이었다. 지난 12일 오후 KT우면연구센터에서 만난 배 소장은 "작은 성취, 성장이 중요하다"며 "작은 목표들을 반복해 이뤄내며 ‘여기까지 했네’ ‘오늘 잘했어’라고 스스로를 토닥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실함·끈기 강점…‘잘 넘어지는 연습’ 필요해

지금의 배 소장을 만든 것 역시 하루하루 일궈낸 작은 성취들이었다. 우주를 동경하고 과학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던 어린 소녀가 오늘날 KT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담당하는 핵심 리더로 서기까지 배 소장은 ‘성실함’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자신의 최고 강점으로 손꼽았다.


스스로를 몰아세울 때도 있었다. 과학고 입시를 준비할 당시 "세상에 있는 문제집은 다 풀어버리겠다"고 결심하곤, 일주일 만에 다 푼 게 대표적이다. 대학 때는 ‘컴퓨터사이언스’ ‘경영공학’ ‘응용수학’ 등 무려 3개 과를 동시에 전공했다. 졸업 요건은 130학점이었지만 총 170학점을 들었다. 배 소장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무엇을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이든, 운동이든 ‘꾸준한 트레이닝’ 자체를 좋아했다.


배 소장이 국내에 몇 안 되는 비전 AI 전문가가 된 데는 딱히 큰 계기가 있지는 않다. 이과 집안에서 태어나 막연히 과학을 중요 학문으로 여기며 프로그래밍·코딩을 배웠고, 카이스트에서 전공한 컴퓨터사이언스로 유학을 떠나 AI까지 공부했다. 취업 이후에는 자율주행 분야를 맡으며 자연스레 AI와 연계됐다. 배 소장은 "처음부터 AI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며 "그 때 그때 그 자리에서 필요한 기술을 공부했고 그런 활동들이 다 엮여서 하나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 부드러운 인상의 외모와 달리, 그가 가장 즐기는 것은 불모지에서의 도전이다. 배 소장은 "불모지에서 삽질하고 밭을 일구고 길을 닦는 것을 좋아한다"며 "제게는 성취가 곧 조직,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테크윈 비전팀을 이끌며 카이스트와 산학협력 체계를 구축해 생태계를 만든 것, 네이버 클로바 초기 방향과 문화를 일군 것. 모두 그에겐 보람찬 성취였다. 그는 "이제는 AI, 메타버스 시대에 KT의 강점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가 고민"이라고 귀띔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어딜 가도 행복할 것 같은 타입’이라고 말하곤 한다. 성향 자체가 긍정적이고 스트레스도 크게 받지 않는 편이다. 배 소장은 "오늘의 고민은 내일로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회피하진 않되, 매몰되진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 테니스, 수영 등 스포츠를 즐기며 ‘이기고 지는 경험’을 많이 쌓은 것이 도움이 됐다. 그는 "당장의 성취보다는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며 "잘 지는 연습, 잘 넘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순민 KT융합기술원 AI2XL연구소 소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본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배순민 KT융합기술원 AI2XL연구소 소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본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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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주변 도움 필수"…죄책감엔 선 그어

배 소장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여성 리더, 특히 여성 기술리더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그는 "여성은 통합, 멀티태스킹, 관계 등에 강하다"며 "여성 리더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협업을 장려하고 정보가 투명해지도록 문화적으로도 변화돼야 한다"고 봤다. 다만 배 소장이 근무하는 KT 융합연구원은 임원 6명 중 무려 3명이 여성이다. 한 자릿수에 불과한 관련 분야 대기업들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높은 수치다.


배 소장은 MIT 재학 시절 한 행사에서 업계 여성 리더들이 "친정 어머니가 아이를 키워주셨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미국도 마찬가지구나’라고 느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혼자서는 결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여성 리더들이 일, 가정을 양립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에게 느끼곤 한다는 죄책감에는 선을 그었다. 배 소장은 "나 또한 어머니가 직장을 다니셨기에 그런 죄책감이 없다. (직장 생활로 인한 어머니의 빈자리가) 저에게는 결핍이나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평소 업무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소통과 협업이다. 특히 기술계열의 경우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각도로 사안을 살펴보고 끝까지 파고드는 호기심과 끈기가 필수다. 신입사원들에게는 "동료나 선배들의 신뢰부터 먼저 얻을 것"을 당부했다. 특히 노력과 성실함을 기본으로 꼽았다. 배 소장은 또 여성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는 데 약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겐 3가지 조언을 내놨다. 먼저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기보다 강점을 살리라는 것. 그는 "모두 잘할 수는 없다"며 "잘하는 걸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두 번째로는 협업 관계를 잘 맺을 것. 마지막으로 배 소장은 일희일비 말고 스스로 칭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완벽주의자일수록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배 소장 역시 하루하루 작은 성취를 찾아내 스스로를 칭찬하곤 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은 인스타그램의 시작과 성공 스토리를 담은 책 ‘노필터’를 읽고 통찰력을 얻은 점을 성취로 꼽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 참 잘했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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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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