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미국 종합반도체 기업 인텔이 4년 안에 대만 TSMC,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선두권 업체를 넘어서겠다는 의욕을 내비친 가운데 TSMC는 대만 당국의 승인 아래 첨단 초미세공정인 2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 공장을 신설하는 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업계 1위 TSMC를 뒤쫓는 데 집중했던 삼성전자로서는 인텔의 공격적인 행보까지 겹쳐 압박감을 느끼게 됐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최근 기술설명회를 통해 2025년까지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로드맵을 공개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까지 파운드리 업계 선두 자리를 되찾겠다면서 인텔이 앞으로 4년간 전개할 반도체 제조 기술들을 소개했다.
우선 2024년 세계 최초 옹스트롬 공정인 인텔 20A 제품을 2024년부터 양산하고 2025년에는 한 단계 더 진화한 인텔 18A 공정에서 제품을 생산해내겠다고 발표했다. 옹스트롬은 0.1㎚ 크기로 20A는 현재 업계 기준으로 2㎚ 공정에 해당한다. 이후로는 1.8㎚의 초미세 공정까지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협업해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먼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20A 공정 기술로 현재 삼성전자 의 대형 고객사인 퀄컴과 협업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퀄컴은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팹리스 기업으로 이 분야 세계 1위다. 패키징(반도체 후공정) 분야의 고객사로 아마존을 유치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또 TSMC, 삼성전자 등의 마케팅 방식과 경쟁하기 위해 제품의 이름을 짓는 체계도 바꾸기로 했다. 선두 경쟁사들이 자사와 다른 방식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인텔의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듯한 손해를 봤다는 판단에서다.
인텔이 칩 생산에서 주도권을 쥐겠다고 발표한지 하루만인 지난 28일, 대만 당국이 TSMC의 2㎚ 칩 공장 신설 계획을 승인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내년 초 공장 건설을 시작하고 2023년까지 생산설비 설치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2㎚ 이하 기술 수준의 초미세공정을 언급하며 추격을 선언했던 인텔의 선전포고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첨단공정 경쟁력을 바탕으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삼성전자 에는 위협이 될만한 내용들이다. 두 경쟁사 모두 자국 정부의 전폭 지원을 받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인텔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지원에 이어 최근 유럽연합(EU)과 유럽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위한 보조금 지원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는 현재 총수 부재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 반도체 공장 신·증설 등 관련 투자가 더딘 상황이다. 구속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6일을 기준으로 전체 형기의 60% 이상인 가석방 요건을 채웠고, 현재 법무부가 다음달 9일 열리는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인 8·15 가석방 대상 심사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해외 출장 등의 제약 없이 적극적으로 경영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가석방보다는 사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초미세 공정을 통해 경쟁에 뛰어든다면 글로벌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국 팹리스 업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 경우 삼성전자 의 시장점유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 삼성전자 도 TSMC와 인텔이 펼치는 주도권 경쟁 속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과감한 투자와 발빠른 실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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