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나라 곳간을 좌지우지하는 재정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정치적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 이에 대한 제도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제언이 나왔다. 재정정책이 '거시 경제정책' 수단으로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이를 통해 점차 정치적 의사결정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9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성장을 위한 재정지출 정책'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최근 확장적 재정정책이 이어진 배경으로 '저성장·저물가·저금리'를 꼽았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저성장 추세의 지속은 성장을 촉진하는 경제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저금리 및 저물가 지속 추세는 통화정책 공간의 축소와 더불어 재정정책 공간의 확대를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의 경우에도 최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쳤고, 이에 따른 국가부채가 가파르게 팽창한 상황이다. 부채관리 필요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부는 '확장재정'이 전 세계적 추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내년에도 이를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신중한 재정운용은 여전히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며 "국가부채 규모 증가에 국가 신용등급이나 이자율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이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국가부채 규모의 증가는 여전히 위험관리 대상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운용에서 총량적 재정규율 자체는 작동해야 한다"고 부채 총량관리의 중요성을 짚었다.
그러면서 "통화정책이 중앙은행에 의해 상당히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재정정책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재정정책의 합리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개혁이 이뤄져 왔지만,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재정정책 결정과정에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재정정책은 조세 부담과 재정지출의 수혜와 관련된 소득재분배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의 일부가 되고 있다"며 "재정정책이 중요한 경제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의 합리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우수한 경제적 성과와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갖고 있는 네덜란드·스웨덴 사례를 들며 '재정규율 내재화'를 역설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개선 요소로는 ▲독립적 재정기구 ▲중기 시계(1년 단위가 아닌 다년 단위의) 예산편성 운용 ▲재정준칙 설정 ▲재정사업 성과관리 및 지출구조조정 ▲재정총량관리와 구체사업 권한 분권화 등을 꼽았다.
박 연구위원은 "이러한 개편작업 이후에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최소화되는 자동안정화 기제를 심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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