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거리 대회가 열린다면, 술 잘 마시는 자랑은 어느 정도로 평가 받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은 말술’이라든가 ‘이런 일도 있었다’는 술과 관련된 일화를 자주 듣고, 술자리에서 술 많이 마신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은근히 술 잘 마시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문화를 생각하면, 술 잘 마시는 자랑거리는 장원은 아니더라도 상위권 입상은 가능할까?
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술의 주성분인 알콜은 몸 안에서 필수 영양소라고 할 만한 역할을 전혀 하지 않는데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유일한 이유는 마시면 기분 좋게 해 주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콜은 뇌세포에 있는 도파민과 엔돌핀, 세로토닌과 같은 행복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켜서 행복물질의 생산을 증가시킴으로써 큰 노력을 하지 않고도 기쁘고, 즐거우며, 행복함을 느끼게 해준다.
행복물질의 분비를 도와주는 물질에는 알콜 이외에도 코카인이나 헤로인, 몰핀, 엑스터시, 마리화나, 카페인과 같은 약물이 있는데, 이러한 약물들은 뇌세포에서 행복물질의 분비를 자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독성이 강하고 건강을 해치는 부작용이 알콜보다 훨씬 심하여 이런 약물이 주는 쾌감에 한 번 중독되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알콜이 주는 행복 효과는 혈중 알콜 농도 0.05~0.06% 수준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이 단계를 넘어서면, 행복감은 서서히 줄어들고, 우울함을 느끼며, 시야가 흐려지고, 말이 어눌해지며, 통제력이 떨어진다. 알콜 농도가 더 높아지면, 일시적으로 기억이 소실되고, 인사불성 단계를 지나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알콜은 기분 좋게 해 주는 것 말고는 다른 순 기능을 찾아보기 어렵다. 몸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지 않으며, 몸 안에 머무르는 동안 온갖 나쁜 짓을 다하기 때문에 우리 몸의 최고 명의는 몸에 들어온 순간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최우선적으로 이것을 분해하여 몸에 해롭지 않은 물질인 물과 이산화탄소로 변경시킨 다음 빨리 밖으로 내 보내려 엄청난 노력을 한다.
세상살이가 모두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 좋기 위해서라면 혈중 알콜 농도가 0.05~0.06% 수준으로 올라갈 정도만 마시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많이 마실 이유가 별로 없다. 연구결과가 보여주듯이 많이 마시면 즐거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몸을 고생시키기 때문에 많이 마시기 경쟁이 벌어지거나 남들에게 많이 마신다고 자랑하는 것은 전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것은 물론, 자리를 함께 한 사람까지 괴롭히는 일은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일이지, 내놓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특히 우리 사회는 어쩌다가 술 많이 마시기 경쟁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고 술 잘 마시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었을까? 기분 좋기 위해 마시기 위해서라면 기분 좋은 수준에서 멈추어야 현명하지 않을까?
원래 도파민이나 엔돌핀, 세로토닌과 같은 행복물질은 특별한 조건이 이루어질 때 분비되는데, 사람들은 그 물질이 분비될 때의 황홀한 기분을 그리워하는 경향이 있다. 도파민의 경우 스포츠에서 득점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거나 임무를 완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행동을 할 때 많이 분비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도 알콜이 그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니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콜의 수많은 기능 가운데 기분 좋게 해 주는 작은 행복만 기억하려 한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잘 하는 것 하나에 못 하는 것이 훨씬 많은데, 못 하는 것은 다 제쳐놓고, ‘한 잔’ 하면 기분 좋은 것만 생각하려 한다. 그래서 1년 동안 전 세계 사망자의 5.3%인 300만 명이 알콜 때문에 죽는다거나 20·30대 사망자의 13.5%가 알콜 때문에 죽는다는 WHO의 경고는 무시한다.
WHO의 경고를 보지 않더라도 알콜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 지는 주변에서 수없이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문제가 있음을 무시하는 것은 대범한 것이 아니고, 무모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도파민이나 엔돌핀, 세로토닌과 같은 행복물질이 잘 분비되지 않으므로 느끼기 쉽지 않은 행복을 술 몇 잔 마시는 것으로 쉽게 느낄 수 있으니 술이 고마운 존재일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그 범위를 넘어서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에게 해로운 수준까지 강요하는 음주문화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김재호 독립연구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