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대가(大家)는 찡그리고 싶은 시대를 오히려 웃음으로 터치했다. 2000년대를 밟으면서 ‘차이나 아방가르드(중국 전위미술)’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거장(巨匠)’이 부산에 온다.
중국 현대미술 4대천왕으로 꼽힐 만큼 세계적 명성을 지닌 작가 유에민쥔(岳敏君/Yue Minjun, 1962~)의 개인전이 오는 12월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유에민쥔은 앞서 2020년 11월 20일부터 올해 5월 9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파격의 웃음’들을 ‘살포’하며 한국인의 마음을 훔쳤다.
6개월간 진행된 ‘한 시대를 웃다!’ 전에서 1990년대 등단 초기 작품부터 미공개 근작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숙명여대 도예과 최지만 교수와 콜라보한 도자기 작품들, 판화 공방인 P.K STUDIO(백승관, 하정석)와 손을 섞은 실크스크린 판화들은 그의 작품들이 계속 새 장르로 확장되고 있음을 예고했다.
서울 전시회에선 평소 그림에 조예를 보이며 유에민쥔 작품의 컬렉터로 알려지기도 한 BTS(방탄소년단)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찾아와 시선을 모았다.
배우 공현주, 장근석, 가수 김재중 등 인플루언서들의 방문이 잇따라 이목을 끌기도 했다.
베니스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의 국제행사에서 총감독을 지낸 윤재갑 감독이 서울 전시에 이어 부산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는다.
현재 전시 부산 장소는 거의 확정된 상태이다. 세부일정 조율과 행정적 협조 등을 위해 유관 기관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재갑 감독은 “그의 작품은 노장사상이나 화엄론에 깊이 기대고 있다”며, “삶과 죽음에 대한 응시, 문명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이야기하는 최근 작품들에서 그런 생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와 무분별한 소비주의로 인한 전 지구적 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공생해 나갈 것인지 등 동시대의 화두를 생각하며 작품세계를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감독은, “오는 12월쯤이면 코로나19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므로, 서울 전시보다 작품 수도 대폭 늘리고 작가 초청행사도 마련하는 등 전시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며, “작가 측에서도 이번 전시를 계기로 코로나로 힘들었던 부산지역 사회와 한중 양국 관계에 ‘일소개춘(一笑皆春, 한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에 봄이 왔다)’의 웃음이 퍼지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유에민쥔은 한국을 좋아한다. 문화예술적 풍토와 성취,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시민사회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한중 간 문화교류가 더 활발해지면서 서로를 거울삼아 평화와 번영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전 세계 영화인들이 부산을 찾듯 세계적인 작가들이 부산을 무대로 자신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각 계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현대미술은 2010년대부터 전 세계 미술관과 갤러리를 휩쓸면서 세계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는 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유에민쥔의 개인전이 부산에서 진행된다면, 문화콘텐츠 기반 중국관광객 유치가 기대된다.
또 중국예술가들의 부산 진출 활성화 등 긍정적인 연쇄효과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행사 관계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예상되는 등 한중 관계 개선 흐름이 빨라지는 가운데,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2)와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며 중국의 대표적 예술작가가 부산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은 관광도시 부산에 큰 도움이 되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전시가 유에민쥔의 국내 첫 개인전이었다면 부산 전시는 국내 두 번째이면서 그의 세계 최대 규모 개인전으로 열릴 예정이다.
유에민쥔은 1962년 헤이룽장성 다칭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톈진의 석유공장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다 취미였던 그림을 전공하기 위해 신사조 미술운동이 한창이던 1985년 허베이사범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초임교사 재직 중에 일어난 천안문사태(1989)를 계기로 이듬해부터 전업화가로서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으로 대변되는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차이나 아방가르드’(중국 전위미술)의 대표 작가로 꼽혀 왔으며, 최근에는 보편적 인간애와 문명비판을 표현하는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와 광주비엔날레 등 세계적 미술제에 여러 차례 참가하면서 세계 미술시장에서도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그의 1995년작 ‘처형’은 2007년 영국 런던 소더비경매에서 590만 달러(한화 약 54억원)에, 1993년작 ‘궝궝’은 홍콩 크리스티경매에서 5408만 홍콩달러(한화 약 75억원)에 낙찰돼 당시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찡그릴 수밖에 없는 시대상을 웃음으로 유쾌하게 승화시키는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는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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