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예고된 참사. 32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 사망자만 502명에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의 초대형 참사였던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등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수사다. 워낙에 큰 사고가 연이어 터진 이후 안전관리가 강화되면서 초대형 참사는 줄었지만 잊을 만하면 나오는 사고의 대부분은 비용 절감에 밀린 안전관리 소홀에서 발생한다.
지난 9일 발생한 광주 건물 붕괴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 당시 철거 작업은 굴삭기가 위에서 아래로 허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철거 대상 건물 뒤편에 폐자재 등을 쌓아 올렸고, 폐자재 더미에 굴삭기가 올라가 구조물을 부쉈다. 전문가들은 이 경우 수평 하중이 앞으로 쏠릴 수 있어 구조 안전 분석이 선행돼야 했다고 지적한다. 철거 현장 바로 옆이 인도와 차도였던 만큼 인도와 차도 쪽에서 허무는 방식을 택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렇게 할 경우 도로를 통제해야 하는 등 비용과 시간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올해 재계와 투자업계의 화두는 단연 ESG다. ESG란 환경(Environment) 사회공헌(Social) 지배구조(Government)의 줄임말로 기업이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하며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투명경영을 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기업이 돈을 버는 곳이지 봉사활동 하는 곳이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지만 ESG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운용자산 1조8700억달러(약 20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월 전세계의 CEO들에게 보내는 연례서한을 통해 기후변화 리스크와 ESG를 투자 결정에서 핵심 요소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블랙록 외에도 아문디, 핌코 등이 이 대열에 동참했으며 국내 운용사들도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60조원을 굴리는 신한자산운용이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포트폴리오에서 일정 수준 이상 ESG 등급을 확보한 기업비율이 70%를 넘도록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투자자들이 ESG를 강조하니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ESG 경영을 얘기하지만 문제는 ESG 경영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도,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다 돈이다.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데는 최대주주의 돈까지 든다. 기업들이 앞다퉈 ESG 위원회를 만들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온도는 다른 이유다. 이번 광주 건물 붕괴 사고가 일어난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두달 전 ESG가 강조되고 있는 기업환경 변화에 따라 안전 및 환경관리를 위한다며 안전경영실을 신설했다. 하지만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추가 비용이 수반되는 안전관리 강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ESG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안전관리는 ESG에서 따로 언급이 안 될 정도로 기업의 지속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런 안전관리가 비용에 밀린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커녕 기업의 존속을 우려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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