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민주당 대표는 "주거 문제를 온전히 살피지 못한 정부 여당의 책임이 크다. 무한 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린다"라고 했다. 원내대표도 "청년 세대의 마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당이 부족했습니다"라고 했다. 서민 교수는 이를 두고 "선거가 좋긴 좋다. …유독 사과에 인색했던 이번 정권한테 영혼 없는 사과라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라고 썼다. 그러나 '영혼 없는 사과'를 받았다고 좋아하는 서교수는 '지나치게 정직한 바보'는 아닐 것이다. 추측건대 그가 진짜 용서한 것은 아닐테니.
'지나치게 정직한 바보'는 115년 전 1906년 나쓰메 소세키가 쓴 소설에 나오는 표현이다. 소설에선 부임한 지 겨우 20일 되는 24세 중학교 수학교사를 기숙사 학생들이 골려줬다. 학생들에 대한 교장의 처분은 1주일간 외출금지와 해당 교사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소세키의 생각은.
"그러나 이 정도의 사과는 큰 착각이었다. 학생들이 용서를 빈 것은 진심으로 뉘우쳐서가 아니었다. 단지 교장의 명령을 받고 형식적으로 머리를 숙였을 뿐이다. 머리만 조아리고 교활한 짓을 계속하는 장사꾼과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용서를 빌지만 결코 장난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학생들과 같은 자들로 이뤄져 있는지도 모른다.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빌 때 진지하게 받아들여 용서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정직한 바보'라고 할 것이다. 용서를 비는 것도 가짜로 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도 가짜로 용서하는 거라고 생각해도 된다. 만약 정말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진심으로 후회할 때까지 두들겨 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소세키의 이러한 관찰은 약 110년 후 조국 교수의 관찰과도 통한다, 그는 "어디선가 들은 우스갯소리 하나 하겠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이에 내 말을 추가하자면, '파리가 앞 발 비빌 때는 뭔가 빨아 먹을 준비를 할 때이고, 우리는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이다' 퍽~~."이라고 썼다.
4·7 보궐선거 패배 후에도 민주당 당대표 대행은 "민주당은 부동산 등 주요 정책 기조는 큰 틀에서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했다. 새로 선출된 민주당 원내대표는 "협치와 개혁을 선택하라면 개혁을 선택하겠다"면서 "개혁의 바퀴를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나"라고 했다. 4년 내내 계속된 적폐청산과 개혁을 아직도 못 이뤘나.
공무원 사기를 진작 한다며 공무원 월급을 0.9% 올리겠다는 경제부총리는 1주택자 조차 죄악시하는 징벌적 종부세 폭탄을 제거하고, 공시지가를 투명하게 산정할 제도적 장치를 고민할 의지나 있는 걸까. 4·16 개각 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번 개각은 그간 정부가 역점을 둬 추진해 온 국정과제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단행됐다"고 한다. 여론조사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민주당 패배 이유를 "여당이 잘못해서"라고 답했다. 그런데도 당정청 모두 가던 길 그냥 간다고 한다.
진짜 용서를 빌어야 진짜 용서를 받는다. 용서를 비는 척만 하면 진심으로 후회할 때까지 두들겨 맞아야 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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