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9월30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김해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사진=문재인 대통령의 당시 선거 캠프
원본보기 아이콘[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다른 말들은 용서가 된다. 정치세력 간 경쟁하면서 공격한 거니까. 그런데 아방궁이란 표현은 지금도 용서가 안 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2019년 5월10일. 노무현재단 유튜브채널 `알릴레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경상남도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제작한 특별판에서 유시민 이사장은 이 같이 말하면서 보수언론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는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 사저 의혹에 대해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발언한 맥락과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이어지는 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요?"라며 노 전 대통령이 보수언론과 정치권에서 겪었던 억울함을 드러냈다.
이렇듯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과 `친문`(親文) 세력에서 `노무현 아방궁`은 그야말로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는 뜻)평가를 받으며 저급한 정치 공세로 해석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21일 언론을 향해 "저의 집 안뜰을 돌려 달라. 그것은 제게 남은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라며 호소한 대목은 친문들 사이에서 지금도 노 전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큰 분노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이사장 역시 이날(2019년5월10일 알릴레오 방송) 방송에서도 당시 느꼈던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 유 이사장은 이른바 `아방궁 프레임`을 확산시켰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인사들을 겨냥해 "그 사람들이 여기 (봉하) 묘역에 참배까지 하러 오면서 사과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다. 퇴임한 사람 가지고 아방궁이라고 표현하면서 온 보수 언론에 도배하고…"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봉화산 숲 가꾸기 예산, 화포천 생태하천 복원예산 이런 것을 다 합쳐서 액수 때려 맞춰 얼마짜리 아방궁이라고 덤터기를 씌웠다"며 "정말 야비한 짓이었다"고 지적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019년5월10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두고 과거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아방궁'이라고 공격한 것과 관련, "지금도 용서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유시민의 알릴레오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친문들 사이에서는 아방궁 논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정치 공세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사모`로 활동했던 한 4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정치에서 정당한 비판은 늘 환영이고 서로 이를 토대로 발전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아방궁 공격은 아예 작정하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낸 것 아닌가"라면서 "그것이 정치인가, 그것이 정치적 공격인가, 말 그대로 전직 대통령에 흠집을 내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비열한 행위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방궁 논란 등이 정치 혐오로 이어져 아예 정치를 외면하는 현상에 대한 당부의 말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한 30대 회사원 이 모씨는 "(아방궁은) 사실이 아닌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정치를 신뢰하지도 않을뿐더러 점점 정치에서 멀어지려고 한다"면서 "과거에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직접 (정치인들이 자신의 의혹에) 처지를 밝힐 수 있는 공간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면서 "정치에 많이 관심을 주고 또 SNS 등을 통해 양쪽 입장을 다 들어봤으면 좋겠다, 정치를 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친문에서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의 아방궁 프레임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받은 고통과도 연관이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아방궁 프레임과 관련해 자신의 집을 취재하는 언론을 향해 거듭 당부의 말을 이어갔다.
노 전 대통령은 "저의 집은 감옥이다. 집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 (또한) 아무도 올 수가 없다"며 "카메라와 기자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황을 불평할 처지는 아니다. 저의 불찰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면서도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자유, 마당을 걸을 수 있는 자유, 이런 정도의 자유는 누리고 싶다"고 호소했다.
또한 "방 안에 있는 모습이 나온 일도 있다고 해 커튼을 내려놓고 살고 있다"며 "먼 산을 바라보고 싶을 때도 있는데, 보고 싶은 사자바위 위에서 카메라가 지키고 있으니 그 산봉우리를 바라볼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제가 방안에서 비서들과 대화하는 모습, 안 뜰에서 나무를 보고 있는 모습, 마당을 서성거리는 모습, 이 모든 것이 다 국민의 알권리에 속하는 것일까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아방궁 프레임은 보수언론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보수언론들은 2007년 9월께 관련 보도를 통해 △노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부부가 사저 옆 6개 필지를, △부산상고 동문 강아무개씨가 노 대통령 생가 터 3개 필지를 각각 구입했으며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측근 아무개씨가 사저 뒤쪽 산자락 2개 필지를 샀고 △대통령 경호실이 3개 필지를 사들여 사저를 둘러싼 인근 14개 필지가 노 대통령 측근의 땅이 됐다고 전했다.
또한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2008년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두고 "지금 노 전 대통령처럼 아방궁을 지어놓고 사는 사람은 없다"며 "혈세를 낭비해 봉하에 웰빙숲을 조성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즉각 반박했다. 7000평 가까이 되는 사저 뒤편 임야 주인 아무개씨는 대통령과 안면도 없는 사람으로, 귀향 발표 전에 투자 차원에서 구입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 생가터는 대통령의 고교 동창 강아무개씨가 생가 복원을 염두에 두고 구입했고, 대통령 경호실 소유 토지는 경호대기동 신축을 위해 법에 따라 구입했으며 소유자들이 각기 다른 동기와 목적에 따라 취득했다고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등 관련 논란을 일축했다. 이후 홍 의원은 아방궁 표현 등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한편 문 대통령의 이례적 반박은 노 전 대통령이 아방궁 프레임에 갇혀 고통을 받은 모습에 대해 반박으로 볼 수 있다는 정치권 견해도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를 언급할 정도로 이번 정치 공세는 `비열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특히 자신의 대한 공격보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이 겪은 수모에 대해 반박하는 성격도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국민의힘에서 경남 양산 사저 부지의 형질이 변경돼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지난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 하시지요. 좀스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대통령 돈으로 땅을 사서 건축하지만, 경호 시설과 결합되기 때문에 대통령은 살기만 할 뿐 처분할 수도 없는 땅이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요? 모든 절차는 법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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