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나훔 기자] 수준급 개발자 확보를 위한 IT·게임 업계의 ‘연봉 인상 릴레이’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력 풀이 제한적이다 보니 수준급 개발자를 구하기가 어렵고, 결국 ‘경력직 빼가기’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관련 인력 육성을 지원하고 나섰지만, 단기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속적인 인재 육성과 함께 기업들이 필요한 인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자체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만명 이상 부족…고급인력 더 심각= 9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노사 임금협상 TF에서 임금협상 타결금 명목으로 전 직원에게 800만원을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예년보다 2배가량 많은 금액으로, 최근 IT 업계에서 인재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는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게임업계도 이미 연봉 인상 릴레이가 한창이다. 지난달 초 넥슨과 컴투스, 게임빌이 전 직원 연봉을 800만원씩 일괄 인상한 데 이어 크래프톤이 개발직군 연봉을 2000만원씩 인상한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이 밖에 조이시티 1000만원, 베스파 1200만원, 스마일게이트 800만원 등 중소 업체들도 잇달아 연봉을 인상했다.
연쇄적인 연봉 인상은 개발자 구인난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개발자 부족 문제는 각종 지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국산업기술진흥원의 산업기술인력 수급 현황 조사에 따르면 산업기술인력이 많은 12대 산업 중 부족률은 소프트웨어(4.3%)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원 2018년 발간한 ‘미래 일자리 전망’에서는 내년까지 4대 미래 유망분야에서 3만1833명의 신규인력 부족으로 인력 수급의 격차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초·중급보다는 대학원 이상의 고급인력 부족현상이 인공지능 7268명, 클라우드 1578명, 빅데이터 3237명, 증강·가상현실 7097명으로 전망해 인력수급의 질적 미스매칭이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수도권 정원 제한에 발목= 이 같은 문제 이면엔 한꺼번에 많은 개발자들을 배출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업계와 전문가들은 인력 부족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지목한다. 1982년 제정된 이법에는 수도권 대학들의 정원 확대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컴퓨터공학과 인원은 근래 빠르게 증가해 작년에는 전체 공과대 정원 1463명 중 745명(50.9%)이지만 서울대는 최근 10년간 컴퓨터공학과의 정원이 변동이 거의 없고, 고려대와 연세대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 AI와 빅데이터 분야의 급속한 확대로 대학 진학자들의 컴퓨터공학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하고 있는데 국가 차원에서 미래 산업이 요구하는 인력이 배출되지 못하고 있다"며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대학의 총정원이 꽁꽁 묶여 있는데 정부는 미래 산업 지형이 요구하는 인력을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발자의 해외 유출도 인력 부족 현상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이나 인도 등 글로벌 기업에 있는 억대 연봉을 제시하면서 우리나라의 S급 개발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추세"라며 "한국 기업들은 주거지 문제 해결 등 간접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해외 개발자들의 수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자체 인력양성해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25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를 통해 제4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2021∼2025년)을 확정했다. 미래 변화대응역량을 갖춘 인재 확보, 과학기술 인재규모 지속 유지·확대, 인재유입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생태계 고도화 등이 핵심 목표다. 이를 통해 정부에서 발표한 디지털(AI·SW), 그린뉴딜, 바이오 신산업 등 미래유망분야 혁신 인재 18만여명의 성장 지원을 차질 없이 뒷받침할 계획이다.
지난해 마련한 ‘AI·SW 핵심인재 10만명 양성계획’도 올해부터 실행한다. 이 사업은 2025년까지 진행되며 총 1조원 정도 국비를 지원받는다. 올해 투입하는 정부 사업비는 2626억원이며, 1만6000명 AI·SW 인재 양성이 목표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강영철 KDI스쿨 초빙교수는 "각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스스로 키워내야 한다"며 "이에 대한 투자에 집중해야 신산업을 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정부에서 하는 사업들은 기초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이지, 업계에서 필요한 고급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사업은 아니다"면서 "기업들의 내부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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