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국제상공회의소(ICC)와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들이 잇따라 일부 선진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독점과 개발도상국들의 백신공급 지연이 세계 경제회복을 느리게 할 수 있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글로벌 공급망으로 연결된 현재 국제경제체제를 감안할 때, 일부 선진국만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는건 세계경제회복에 의미가 없으며, 자칫 세계경제성장률이 기존 기대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작 백신을 선점한 선진국들마저 백신 제조사들이 공급차질이 발생할 것이라 밝히면서 백신보급 지연이 우려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외신에 따르면 25일 공개를 앞두고 있는 ICC의 연구보고서에서 올해 연말까지 개도국 국민 절반 이상이 백신 접종에 실패할 경우 국제무역과 중간재 공급망에 타격이 발생해 4조4000억달러(약 4859조원) 이상 생산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로 인해 전세계 상품 생산량은 약 5.7%포인트 낮아질 수 있고 경제회복도 기존 전망보다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당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세브넴 칼렘리 오즈칸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는 주요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개도국과 선진국은 결국 상품 수출과 수입과정에서 긴밀히 연결돼있다"며 "개도국의 백신공급 지연은 결국 선진국이 필요로 하는 중간재 공급망회복의 지연으로 연결되고, 상품수요도 낮아질 것이므로 피해가 고스란히 선진국들로 전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WB도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보고서(Global Economic Prospec)’에서 전세계적인 백신보급의 성공과 실패, 두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서로 다른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놨다. 백신보급에 성공해 연내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날 경우 세계경제 성장률은 올해 4.0%, 내년에는 3.8%로 전망되지만 백신보급에 실패해 코로나19가 계속 창궐할 경우에는 올해 1.6%, 내년 2.5%로 성장률 전망치가 크게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작 백신을 선점한 선진국들도 백신 제조사들의 잇따른 공급차질 보고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AP통신에 따르면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제약사들이 그들이 서명한 백신 공급계약을 준수토록 법적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제약사들은 공급지연 사유를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경한 어조로 경고했다.
앞서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는 EU측에 올해 1분기까지 EU측에 인도될 예정인 백신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 일간지 빌트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는 22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측에 자사 백신의 초도 공급물량이 계획보다 적어질 것이라 보고했다. 주요 외신들은 EU집행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스트라제네카의 1분기 초도 공급물량이 기존 약속된 물량보다 60% 정도 줄어든 3100만회분에 그칠 것이라 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앞서 올해 1분기까지 EU에 8000만회분을 공급키로 계약했었다.
아스트라제네카측은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에서 발생한 변이바이러스로 인한 백신 조정과 인도 위탁업체 공장서 발생한 화재, 그리고 생산량 증대에 따른 증설 등으로 지연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화이자 역시 앞서 지난 15일 EU측에 "생산량 증대를 위한 벨기에 공장 증축으로 인해 일시적인 백신 출하량 감소가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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