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책임 있는 기업 시민으로서 고객·주주·사회와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일류 기업의 핵심 요소다."(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ESG의 근본은 지속가능성으로 금융은 사회와 환경까지 존중하고 배려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윤종규 KB금융 회장)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가치 향상이 우선인 시대가 됐다. 특히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금융산업에서의 ESG 경영은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금융지주들은 잇따라 조직개편을 통해 ESG 전담부서를 만들고 있다. ‘녹색 금융’이 다시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국내 금융권에서도 친환경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한 그린본드와 ESG채권 발행에 적극 나서고, ‘탈석탄’을 선언한 금융회사도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 결과에서 KB금융지주가 금융사 가운데 유일하게 전 부문 A+를 받았고 신한금융은 탄소 중립을 추구하는 ‘제로 카본 드라이브(Zero Carbon Drive)’를 선언했다. 하나금융은 ‘그룹ESG 경영TFT’를 설치했고 우리금융은 ‘2050 탄소중립 금융그룹’을 선언했다. NH농협금융은 특화된 ESG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신진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ESG 경영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 활동이 아니라 필수 과제"라며 "기업의 가치를 중장기적으로 제고하면서 사회발전과 환경개선에 기여할 기업별 경영전략과 사업모형을 발굴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과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 발맞춰 국내 금융권에서 친환경 경영과 투자 바람이 불고 있다. 탈(脫)석탄 금융을 공식화하거나 적도원칙에도 속속 가입하고 있다. 수익만을 추구해선 여러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해 사회적 기업으로서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 방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확산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기후변화 대응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만큼 이 같은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금융권에선 ESG 채권 발행이 대세를 이뤘다. ESG채권은 친환경 프로젝트 자금조달을 위한 그린본드(Green Bond),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소셜본드(Social Bond), 그 둘을 결합한 목적의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 등으로 구분된다. ESG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은행은 이 자금을 환경·사회문제 해결 등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
지난해 민간 은행권에서 발행된 ESG 채권 규모는 5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은 원·달러·유로화 등으로 총 4차례에 걸쳐 ESG 채권을 발행해 약 2조1500억원을 조달했다. 2019년 국내 금융지주 가운데 처음으로 그린본드가 결합된 ESG채권을 발행했던 신한금융은 지난해에도 5억달러를 추가 발행했다. 신한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지원을 위한 5000만달러 소셜본드와 4억 호주달러 규모의 외화 캥커루 채권을 발행했다. 이제까지 ESG채권 발행 실적이 없던 NH농협은행도 지난해 7월 처음으로 5억달러 소셜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하나은행(1억5000만달러)과 우리은행(7500억원, 4억 호주달러)도 잇달아 발행 대열에 동참했다.
이처럼 금융사의 ESG채권 발행이 늘어나고 있는 데에는 지속가능 경영을 강화한다는 이미지 제고 효과는 물론 자금 조달의 다양성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SG 채권 발행 규모는 2018년 1조2500억원에서 2019년 25조6873억1500만원으로 폭증했다. 지난해에는 58조884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탈석탄 기조 또한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금융권 ESG 경영의 흐름 중 하나다. KB금융은 지난해 9월 기후변화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내 금융그룹 최초로 KB국민은행 등 모든 계열사가 참여하는 ‘탈석탄 금융’을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지구온난화 억제의 선결 과제인 석탄화력발전 감축을 위해,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규 프로젝트 파이낸싱 및 채권 인수에 대한 사업 참여를 전면 중단할 예정이다. 또 KB금융은 ESG경영 중장기 로드맵인 ‘KB 그린웨이(GREEN WAY) 2030’을 수립했다. 이는 2030년까지 KB금융그룹의 탄소배출량을 25% 감축(2017년 대비)함과 동시에 현재 약 20조원 규모의 ‘ESG 상품·투자·대출’을 50조원까지 확대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11월 ‘제로 카본 드라이브(Zero Carbon Drive)’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50년까지 그룹이 보유한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신한금융은 향후 그룹의 자체적 탄소배출량을 2030년 46%, 2040년 88%까지, 그룹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배출량은 2030년 38%, 2040년 69%까지 감축할 계획이다. 그룹의 탄소배출량 측정 모형을 더욱 고도화하고 배출량 감축 목표를 국제적으로 검증받기 위해 국제기구 가입도 추진한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친환경 금융확대는 미래 세대를 위한 금융의 필수적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금융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금융그룹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를 위해 그룹 내 ‘뉴딜금융지원위원회’를 확대 개편하고 디지털뉴딜에 4.2조원, 그린뉴딜에 4.7조원, 안정망강화에 1.1조원 등 향후 5년간 총 10조원을 지원키로 했다. ‘2050 탄소중립 정책’을 적극 지원, 수소연료전지,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PF투자를 확대해 경제생태계를 저탄소 경제로 전환키로 했다.
하나금융은 현재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환경경영 강화, 환경·사회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 도입, 지속가능금융상품 분류체계 정비, 적도원칙 가입, TCFD 가이드라인 도입 등을 검토 중이다. 또 ‘탄소중립 2050’ 정책을 반영해 탄소배출량 중장기 목표를 재설정해 관리할 계획이다. NH농협금융은 그룹 ESG 경영체계, ESG 투자 프로세스, ESG 대응 관리체계 등을 포함한 ESG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은행권의 ESG 경영은 앞으로 보다 확대되고 체계화될 전망이다. 각 금융지주가 속속 경영전략의 한 축으로 ESG 목표를 수립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해 회장 자격요건에 ‘ESG 실천 의지’를 추가했다. 또 같은 해 3월에는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신설하기도 했다. ESG위원회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을 포함해 9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룹 ESG 전략과 정책 수립, 추진현황 관리·감독 등 최고의사결정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ESG 경영 가속화를 위한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그룹 전략·지속가능부문(CSSO) 산하에 ESG기획팀을 신설했다. 기존에는 전략 관련 팀 내부에서 ESG를 함께 담당했었지만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별도 팀이 신설됐다. 신한금융은 2017년부터 그룹의 지속가능경영 체계 확립을 위해 그룹 최고경영자(CEO)·자회사 평가에 ESG 관련 항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후 지난 2019년부터는 ESG를 독립된 평가 항목으로 만들었다.
하나은행의 새로운 10년 성장전략은 ‘넥스트(NEXT) 2030, 빅스텝(Big Step)’이다. ESG경영 확대를 위해 경영전략본부 내 ESG 전담 부서인 ESG 기획 섹션을 신설했다. 기업 활동 전 영역에 ESG 철학을 도입하고, 실행 중심의 ESG경영 체계를 강화하는 게 목표다.
우리금융은 그룹 차원의 ESG경영과 브랜드 관리를 위해 지주 컨트롤 타워 역할을 강화하고, ESG경영부를 신설했다. 또 그룹 중점사업 관리 효율성을 높이기위해 자산관리·글로벌·CIB 사업부문은 폐지하되 업무는 사업성장부문에서 통합 수행하기로 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달 열린 그룹 경영협의회에서 "새해 그룹 경영계획 및 중장기 전략에 ESG를 핵심 전략으로 반영해 향후 ESG 경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면서 "자회사들도 사업추진시 ESG 요소들을 적극 연계해달라"고 강조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