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패러독스는 괴물을 만든다

2년 만에 법정 최고금리 인하 논의 다시 수면 위로
24%→20% 낮추는 데 정치권·경제부처 수장 한 목소리
정부의 가격 통제는 과소 공급이라는 더 큰 부작용 초래 우려
서민층에 집중된 저신용자, 결국 불법 사금융에 내몰릴 수도

이초희 금융부장

이초희 금융부장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초희 금융부장]2년 만이다. 저신용자를 위한 법정 최고금리 인하 논의가 다시 시끄럽다. 2018년 27.9%였던 최고금리는 현재 24%다. 이를 20%로 낮추는 것을 놓고 설왕설래(說往說來)다. 정치권의 잇따른 법안 발의에 정부 경제부처 수장들이 필요성에 호응하면서다. 모처럼 여·야가 한 목소리로 움직이면서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도 개정안에 대한 검토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당초 최고금리 인하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다. 명분은 확실하다. 서민 이자부담을 줄이고 재활을 돕는다는 것이다. 높은 이자에 돈을 빌리지 못하는 금융 약자들을 위해 금리를 통제해서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게 골자다. '높은 금리=악(惡)'이라는 프레임이 불러온 발상이다.

1917년 미국 하원의원 앤드류 제이 볼스테드는 술의 양조부터 판매, 유통을 금지하는 법안(금주법)을 내놓았다. 주류 유통을 없애 음주로 인한 범죄 감소를 유도하자는 의도였다. 아이러니하게 이 정책은 1920년대 미국을 마피아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금주법으로 정상적인 술 제조 및 유통이 막히자 마피아들이 미국 '밀주'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갱스터로 불리는 알 카포네도 금주법이 낳은 최악의 마피아였다. 수백 명을 죽이고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할 만큼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 좋은 의도의 금주법이 희대의 비극을 낳은 셈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최고금리 20% 인하에 공감했지만 그 간의 사례를 보면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줄기는 커녕 정반대였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체 상위 20개사 이용자는 2017년 104만5000명에서 지난해 53만명으로 2년 만에 절반이 사라졌다. 최고금리를 27.9%에서 20%로 내린 사이 이용자가 반토막 난 것이다. 제도권 막차인 대부업에서도 돈을 못 빌린 저신용자들이 결국 불법 사금융을 기웃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 승인율은 11.8%로 2015년 21.2%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부업체 급전 신청자 10명 중 1명만 실제 대출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발견된 대부업체들의 불법 명함형 전단들.(사진=정준영 기자)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발견된 대부업체들의 불법 명함형 전단들.(사진=정준영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선한 동기가 나쁜 결과로 이어진 선례 다수
경쟁 시장 가격 통제시 과소 공급 부작용 초래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는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악한 의도로 일을 시작하지만, 항상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소개했다. 이것을 '메피스토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또 로마 시대부터 전해져오는 격언 중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도 있다. 메피스토의 법칙과 반대로 선의로 시작한 일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는 뜻이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막시밀리안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직후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해지자 우윳값을 강제로 내렸다. 누구나 값싸게 우유를 먹게 하자는 취지였다. 경쟁시장에서의 가격 통제는 과소 공급을 불러왔다. 우윳값이 하락하자 수지타산이 안 맞게 된 낙농업자들이 젖소를 팔기 시작했다. 우유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줄어들자 '보이지 않는 손'은 우윳값을 끌어올렸다. 결국 서민들은 우유 먹기가 더 어려워졌고, 암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되는 우유는 부자들의 전유물이 됐다.

정부의 강제적인 가격 통제는 시장 기능을 왜곡하게 마련이다. 가격을 억누르면 과소 공급을 초래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경제 상식이다. 이는 암시장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가격은 시장 자율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정책은 항상 시장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기본원칙을 무시한 섣부른 규제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하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고 만든 정책은 언제든 알 카포네 같은 괴물을 만들 수 있다. 정책 입안자들이 시장의 목소리를 절대 외면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