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설익은 입법으로 숨이 막힙니다." 국내 식품업계가 규제 강화에 울상을 짓고 있다. 긍정적인 규제 취지와는 다르게 각종 부작용으로 성장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가득하다.
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마련해 11월9일까지 입법예고하면서 프랜차이즈 업계 반발이 거세다. 개정안에는 가맹본부 직영점 1년 이상 운영 의무화 조항이 포함됐다. 가맹점을 모집하기 전 직영점 운영을 통해 사업 경험·노하우를 확보하도록 해 가맹점주가 애먼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가맹점주 피해 방지 차원의 정책인 것은 맞지만 규제로 인해 프랜차이즈 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했다. 국내외 경기침체 여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뜩이나 경제 활력이 바닥인 상황에서 가맹본부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가맹점 모집을 어렵게 만다는 것은 적절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가맹본부가 가맹점 부담으로 광고·판촉행사를 하려면 사전에 일정 비율 이상 가맹점주로부터 동의를 받도록 했다. 지금은 가맹본부가 먼저 광고·판촉행사를 실시한 후 비용 집행 내역만 가맹점에 사후 통보하도록 규정돼 비용 떠넘기기에 노출돼 있다. 업계는 사전 동의를 얻는 시간 등으로 광고·판촉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마케팅 활동이 어려워지면 결국 매출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은 가맹점 성공을 가르는 핵심 요인인 '가맹점주의 노력'을 부정하고 모든 책임을 가맹본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면서 "전방위 규제로 프랜차이즈 산업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성장동력도 사라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단소송제 확대를 위한 집단소송법 제정안 역시 입법 예고되면서 식품업계 표정이 싸늘하다. 식품 분야의 특성을 고려할 때 집단소송제 도입 취지에 따른 효과보다는 소송 남용 등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얼음이 너무 많고 커피가 적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미국 스타벅스와 광고보다 햄버거의 칼로리가 높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미국 맥도날드의 사례는 이미 유명하다. 국내 기업도 이 같은 '소송'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불만 있는 소비자들이 모여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이른바 '기획 소송'이 난무해지고 영세할수록 줄도산의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은 섭취에 따른 개인별 차이가 있고 농축수산물 형태의 1차 생산부터 가공, 제조, 운반, 저장, 판매, 소비까지 거쳐야 하는 복잡한 단계로 이뤄져 있어 피해자와 피해사실을 곧바로 특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나아가 영세한 산업 특성상 집단소송에 소요되는 시간 및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집단소송 제기로 형성될 위해식품 의혹과 책임 없음이 확인된 경우에도 그 손해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식품산업의 특성상 블랙컨슈머 관련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집단소송이 도입되면 이러한 부작용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특히 식품 분야에서도 프랜차이즈 형태가 가장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 같은 품질의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원칙인 프랜차이즈 외식업의 경우 가맹본부의 식품위생 관리 소홀이 자칫 대규모 소송과 손해배상을 부를 수 있다. 외식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미국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두 기업은 최종 승소했지만 수년간 소송에 시달리며 브랜드이미지 훼손, 합의금 지급 등을 감수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입법예고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일가 지분이 상장회사 30% 이상, 비상장회사는 20% 이상인 경우'에서 '총수일가 지분이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 이상인 경우', '총수일가 보유 지분이 20% 이상인 회사가 50% 초과 지분을 보유하는 회사'로 한층 강화된다.
산업계는 기업을 범법집단 취급하는 '과잉 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위는 ▲총수일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358개 기업의 내부거래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업계는 '규제 만능주의 사고'라고 맞섰다. 특히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으면서도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식품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식품업계의 경우 창업주를 중심으로 승계 경영으로 이어진 곳이 많아 지주사나 주요 계열사의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제조업 대비 영업이익률이 낮다 보니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 수직계열화을 추진해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졌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보다 오너 경영 중심으로,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편이며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거래가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면서 "규제 대상으로 확대되는 준대기업과 중견기업이 많이 포진해있는 상황에서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서만 제재한다고 하지만 공정위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자체가 부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하림, 농심, 오뚜기, 동원, 삼양식품 등 대부분 식품업체가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