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유럽과 미국이 탄소 국경세 시행을 예고하면서 온실가스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시행 중인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더불어 기업들에 이중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 정부와 철강·석유화학·IT 기업 등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환경부는 이달 초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세 도입과 관련된 대책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달 중 2차 회의를 여는 등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업종 단체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감안해 향후 비대면(언택트)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정부가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선 것은 탄소 국경세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EU는 다음 달 말까지 의견 수렴을 한 뒤 내년 2분기에 세부 운영방안을 채택하고 2023년 1월부터 탄소 국경조정을 시행한다.
미국도 유사한 정책을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최근 2035년까지 2조달러(약 2338조원)를 투자해 모든 전력 생산에서 탄소가스 배출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고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 탄소 국경세를 포함한 탈(脫) 탄소 정책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주요 시장인 EU와 미국이 탄소 저감 정책을 강화하면 우리 수출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EU가 어느 업종에 탄소 국경세를 적용할지, 역내 탄소세 부과·입품에 한해 관세 부과·배출권 거래제 확대 등 셋 중 어느 방식으로 제도를 시행할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면서도 "EU 역내에서 탄소 배출권을 무상 할당 중인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이 우선 적용될 것이란 예상이 많아 동향 모니터링, 관계부처 간 정보 공유, 업종 단체와의 소통 등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기업은 탄소배출권 적용 업종·부과 방식 외에도 ▲최혜국 대우, 양허 등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법 저촉 여부(통상) ▲RE100(2050년까지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캠페인) 도입 및 탄소배출권 실적 반영 여부(에너지) ▲제품 제조 시 폐기물 등 저감 대책 마련(제조업) 등을 감안해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엔 삼성, SK , LG , 현대 등 주요 대기업들을 제외한 상당수가 대처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EU 탄소 국경조정 동향 및 대응방안'에서 "탄소 국경조정이 시행된다면 이미 국내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배출 비용을 부담 중인 한국 기업엔 탄소배출 관련 이중 부담이 발생할 수 있고, EU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EU의) 탄소 국경조정 추진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표준화, 검증·보고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온실가스 배출 저감 기술 및 제품 개발 등을 위한 기업의 선제적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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