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 그래도 석유는 살아남는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유는 '장화와 하이힐' 관계
원유 소비량 감소할 것이란 생각은 오해

아시아경제신문은 격주로 금요일 자에 국제 석유 질서의 변화와 에너지산업의 미래를 진단하는 '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ㆍ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ㆍ가스 MBA 과정을 밟았습니다. 지난해 석유의 현대사를 담은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습니다.
[최지웅의 석유패권전쟁] 그래도 석유는 살아남는다 원본보기 아이콘


현재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지난 7월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독일은 올해 상반기 전체 발전(發電)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5.8%를 기록했다. 10여 년 전인 2009년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약 18%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매진하며 올해 전기 생산 중 절반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국가로 도약한 것이다.


그럼 그 기간 동안 독일의 원유 소비량은 감소했을까? 그렇지 않다. BP가 매년 발표하는 통계에 따르면 2009년 독일의 원유 소비량은 일 234만 배럴이었고, 2019년에는 일 228만 배럴을 기록했다. 10년 전 소비 물량에서 약 6만 배럴 감소한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약 3배로 증가했지만 석유 소비량은 불과 2.5%가 감소했다.

이것은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국도 북해에서 불어오는 해상의 강한 바람을 이용해 해상풍력 발전을 빠르게 확대하며, 독일 못지않게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려가는 중이다. 영국은 2009년 이후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약 5배로 증가시키면서 2019년 기준 약 37%의 전기를 신재생에너지에서 얻었다. 그러나 독일처럼 원유 소비량은 같은 기간 불과 5% 감소에 그쳤다.


신재생에너지는 전기 생산 위한 발전용에너지
항공유 등 원유와 쓰임 달라

많은 사람들이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되면 석유 사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오해한다. 이 잘못된 직관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전체 에너지 비중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나아가 석유의 시대가 곧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신재생에너지는 석유의 자리를 잠식할 수 없다.


독일의 지난해 원유 소비량은 앞서 언급했듯이 일 228만 배럴이다. 한국의 소비량인 일 276만 배럴보다 적다. 그러나 한국은 수입한 원유의 절반 이상을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의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으로 정제하고 가공해 수출하고 있다. 이렇게 가공 후 수출한 물량을 제외한 순소비량을 놓고 비교한다면, 독일은 경제 규모에 맞게 한국보다 훨씬 많은 양의 원유를 소비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만을 예로 들었지만 스페인,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사용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유럽은 여전히 경제 규모에 비례하여 막대한 원유를 소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신재생에너지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석유 소비량은 줄지 않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재생에너지와 석유는 그 쓰임이 달라서 서로의 대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면 둘은 마치 '장화와 하이힐'처럼 용도가 판이하게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쓰는 전기는 석유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석유를 이용한 발전 비중은 3~4% 수준이며 화력발전은 대부분 석탄을 사용한다.


▲최지웅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저자,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 근무

▲최지웅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저자,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 근무

원본보기 아이콘


석유의 가장 큰 용도는 그것이 휘발유, 항공유 등으로 가공돼 차량, 선박, 항공기 등의 연료로 쓰이는 것이다. 수송용 연료로 전체 석유의 약 50~60%가 소비되며, 그 다음으로 플라스틱, 섬유, 화장품 등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 약 20 %가 소비된다. 그리고 남은 일부가 산업용, 난방용 연료나 기타 용도로 활용된다.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전기 생산을 위한 발전용으로 대부분 쓰인다. 신재생에너지원 중 비중이 가장 큰 풍력으로 전기 생산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항공기와 선박의 연료는 될 수 없다. 일부는 2차 전지 기술을 활용해 자동차의 동력원이 되기는 하지만 아직은 일부 소형차에 한정돼 있다. 태양광 역시 전기 생산의 원료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석유화학 제품이나 아스팔트 도로를 대체할 수 없다. 한마디로 신재생에너지는 발전용 에너지로 비중을 늘려갈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지만 그것이 석유를 대체할 수는 없다.


골드만삭스, 세계 석유 소비량 2030년까지 매년 증가 전망
석유 대체 기조 아직 시기상조

골드만삭스는 올해 7월에 낸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세계 석유 소비량이 연 평균 일 50만 배럴에서 110만 배럴 범위에서 매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에너지 정보업체 우드맥킨지도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가 급진적인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는 경우에도 2030년까지 석유 소비량이 줄어들 수 없다고 전망했다. 당분간 신재생에너지의 활용이 발전 분야에 한정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일과 영국이 늘린 신재생에너지는 무엇을 대체한 것일까? 다시 말해 그들의 노력이 석유 소비를 줄이지 못했다면, 도대체 무엇을 줄인 것일까? 여기서 독일과 영국은 흥미로운 차이를 보인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적극적인 탈원전 정책을 폈다. 사고 이전 전체 발전량에서 약 25%를 차지하던 원자력 발전이 2019년에 약 12% 수준까지 감소했다. 즉,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를 늘려가면서 주로 원자력을 줄였다. 반면 영국은 같은 시기 원자력발전은 유지하고,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석탄 화력발전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했다.


영국은 독일과 달리 일부 원전을 새로 건설하는 정책도 폈는데, 이로 인해 한국전력공사가 영국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경쟁하기도 했다. 한편 약 40%의 비중을 차지했던 영국의 석탄 화력발전은 최근 약 3% 수준까지 줄었고, 2025년까지는 모든 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을 계획이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대량의 석탄 사용을 시작한 나라에서 가장 먼저 그것을 멈추는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풍력, 태양광 등의 에너지는 석유와 쓰임이 다른 에너지원이다. 앞으로 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한 사회적 합의는 신재생에너지의 확대에 따라 원전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화력을 줄일 것인지와 관련될 수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원전은 위험하고 화력발전은 지저분하다.


독일과 영국은 이 문제를 두고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독일은 핵물리학자를 나치의 부역자로 인식한 역사가 있고, 영국은 1950년대 런던 스모그 사건으로 1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트라우마가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그들의 에너지원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들의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게 그리고 그 선택이 무엇이건 간에, 그들에게 석유는 여전히 주요 에너지원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