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아시아경제 이초희 금융부장, 정리=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D-데이 2020년 8월5일.’
신현준 한국신용정보원장은 이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ㆍ정보통신망법ㆍ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첫 날이기 때문이다. 신 원장은 최근 서울 중구 은행회관 집무실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터 3법 개정으로 금융회사는 제품서비스 개발 위한 데이터를 산출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는 더 나은 맞춤형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신용정보원은 데이터 중심 경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핵심 플랫폼이 될 것”이라면서 “양질의 데이터가 편리하고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는 데이터 생태계 조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데이터는 ‘미래의 원유’이자 4차산업의 씨앗으로 불린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각 국가가 빅데이터 수집에 열중하는 것도 앞으로 데이터를 얼마나 잘 가공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 원장은 데이터를 ‘물’로 신용정보원을 ‘수도사업본부’로 비유했다. 그는 “수도사업본부는 마실 수 없는 물을 끌어다 단계적인 정수처리를 거쳐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만들어 가계와 기업에 공급한다”며 “신용정보원은 금융ㆍ공공 데이터를 수집해 표준화, 정확성 점검 등 절차를 거쳐 고품질 데이터를 금융회사 등에 공유하는 핵심 인프라”라고 소개했다.
신용정보원은 아직 일반 국민에 생소한 조직이다. 신용정보원은 은행연합회, 여신금융협회, 생명ㆍ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보험개발원 6개 기관에 흩어져있던 신용정보를 통합 관리하기 위해 2016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종합신용정보기관이다. 이제 ‘5살’이 된 신용정보원은 데이터 3법 시행을 앞두고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에 비해 ‘데이터 경제’로의 이행이 한참 뒤처져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엔 데이터 활용 관련 규제가 전무하다시피 해 기업들이 신용정보를 활용해 무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구글과 아마존이다. 이들 기업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기존 산업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신 원장은 “우리나라는 데이터 3법 개정으로 이제 겨우 유럽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ㆍGDPR) 수준이 됐다”고 강조했다. GDPR는 유럽연합(EU)이 지난해 5월부터 시행한 법으로 가명정보 개념을 도입하고 연구ㆍ통계작성 등의 목적으로 신용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EU는 이 법으로 데이터 기반의 혁신성장을 추진하기 위한 보호와 이용의 균형을 맞췄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나라도 신용정보 활용을 위한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뒤늦게나마 마련한 셈이다.
법이 시행되면 신용정보원의 역할이 커진다. 기관과 기업이 데이터의 익명ㆍ비식별 조치를 적정하게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권한이 생긴다. 또 정보 활용과 관리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상시 평가도 한다.
신용정보원은 개인 신용평가 체계 검증위원회도 설치, 운영할 계획이다. 검증위는 민간 신용평가(CB)회사가 활용하는 기초 정보의 타당성, 평가모형의 통계적 유의성 및 안정성, 민원 및 제도개선 사항 등을 심의한다. 신 원장은 “미국 금융소비자보호국의 조사영역과 방법론 등을 벤치마킹해 검증위의 성공적인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검증위는 신용정보원장을 포함해, 학계, 법조계, 금융권, 소비자보호 분야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할 예정이다.
데이터 3법 시행으로 탄생하는 마이데이터 산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에서도 신용정보원은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마이데이터의 핵심은 신용정보의 관리 주체가 기업에서 개인으로 이전된다는 점이다. 본인의 신용정보를 어디에 보관하고, 어느 회사가 활용하도록 할 지 소비자가 직접 정한다.
데이터를 가공해 소비자 맞춤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마이데이터 허가 사전 수요조사를 진행한 결과 116곳이 신청서를 냈다. 은행, 보험사 등 금융사가 55개로 가장 많지만 네이버, 카카오 같은 ‘IT 공룡’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미 만반의 준비태세도 갖췄다. 신 원장은 “지난 4년여 간 마이데이터 시대의 핵심 플랫폼으로 역할하기 위해 조직부터 시스템 도입, 인력 확충을 병행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데이터 놀이터’라고 할 수 있는 금융 빅데이터 개방시스템 ‘크레디비’(CreDB)를 오픈해 개인과 기업 관련 표본 데이터를 제공했다. 금융사, 핀테크사, 학계 등 43개 기관이 53건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신용평가 모형 개발, AI 솔루션 고도화, 학술 논문 저술 등의 연구 성과를 냈다.
또 금융빅데이터센터를 설립했으며 최근엔 전문가 모임인 금융데이터포럼도 출범시켰다. 고도화된 시스템과 연구센터, 싱크탱크 등 마이데이터를 위한 기반 영역을 차근차근 닦아 놓았다.
공직에 있을 때 ‘국제통’으로 불린 그는 신용정보원의 국제적 위상도 한층 높였다. 신 원장은 초대 아시아신용정보네트워크(ACRN) 의장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미국 금융소비자보호국,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신용정보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서도 ‘알게 모르게’ 제 역할을 해냈다. 정부의 소상공인 금융지원 프로그램 발표 뒤 6영업일 만인 지난 4월6일 ‘중복수급 방지 시스템’을 구축했고, 코로나19가 가계 및 개인사업자의 금융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모니터링 해 당국에 매일 제공 중이다.
정보가 한 곳으로 집중되다보니 보안사고나 사생활 노출, 과도한 정보 집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해 신 원장은 “보안 이슈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신용정보원이 수집하는 정보는 대출 등 여신정보와 연체정보, 보험계약 정보 등 공적 신용정보 기관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정보로 제한된다”며 “신용정보 수집은 정보 주체의 철저한 사전 동의를 기반으로 이뤄지며 수집된 신용정보를 다른 기관에 제공할 경우에도 정보 주체의 사전 동의 및 사후 고지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보안이 생명이라는 슬로건 아래 최고의 보안 인력을 활용해 최고 수준의 보안 기술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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