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ㆍ정보통신망법ㆍ신용정보법) 시행을 앞두고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올 초 국회 통과 당시 반색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그간 검토했던 사업들을 도리어 보류하는 분위기다. 이는 시행령이 법 개정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가명 정보 활용을 위한 길을 터주고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데이터 3법이 하위법령인 시행령에 발목이 잡힌 꼴이다.
◆"정보 활용 어려워" 독소조항 살펴보니= 이번 주로 예정된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 개정안 고시 입법예고를 앞두고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14조 2항'이다. 개인정보를 추가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당초 수집 목적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고 '제3자의 이익'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처리 관행'에 비춰 추가 이용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가명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가명을 의무화하는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지키도록 함에 따라 사실상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는 글로벌 표준으로 인식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 특히 시행령 내 '상당한 관련성' '관행에 비춘' '제3자의 이익' 등 모호한 단어들도 다수 사용돼 기업의 혼란을 더 키우는 모양새다. '상당한 관련성'이 있고 '관행에 비춘' 점을 법적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게 되는 만큼 법원 판례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아우성도 쏟아진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는 비판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김재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도록 하면 실제 업무에 적용이 어렵다"며 "과도하게 경직됐다"고 꼬집었다. 법무법인 세종의 장준영 변호사 역시 최근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유럽 GDPR보다 더 엄격하다"며 "정보를 활용해도 될지 말지가 개별 사안에 따라 다르고 그레이존도 많다"고 지적했다.
가명정보 결합절차(제29조)와 관련해 데이터 결합이 가능한 물리적 공간을 한정한 것 역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결합전문기관만 거치는 신용정보법과 달리 개인정보보호법은 두 곳을 거치도록 복잡하게 규정됐다.
◆'빛 좋은 개살구' 그치나…업계 반발= 문제는 잇따른 비판에도 현 개정안이 그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행안부는 시행령 및 고시 제ㆍ개정 과정에서 업계가 제출한 의견에 대해 뚜렷한 답변 없이 고시 입법예고를 추진 중이다. 지난달 말 데이터3법 주무부처인 행안부, 방통위, 금융위원회가 합동으로 진행한 온라인 토론회에서도 의견 수렴 절차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학계, 산업계 등 다수의 전문가들이 많은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관계 부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진행 상황조차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고 우려했다. 이대로 강행될 경우 업계의 혼란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 한국형 디지털 뉴딜 등 사회적 분위기에도 역행하는 법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된 내용들"이라면서도 독소조항 수정 가능성에는 답변을 아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데이터 관련 시장 규모는 2018년 1660억달러 수준에서 2022년 2600억달러로 성장이 기대된다. 미국에서 민간을 중심으로 200조원 규모의 데이터 거래 시장이 활성화된 반면, ICT 강국을 표방하는 한국의 경우 개인정보법 위반 소지 등에 발목잡혀 제대로 된 활동조차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 2019'에서 한국은 상위권을 기록했으나 '빅데이터 활용 및 분석 항목'에서는 64개국 중 40위에 머물렀다. 특히 데이터 산업은 정부가 강조하는 AI 강국을 위해서도 반드시 활성화돼야 하는 부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데이터3법이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형 뉴딜,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법의 제정 취지를 살린 시행령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 실장은 "데이터 3법의 취지에 맞춰 과도한 규제, 입법권 침해 내용은 수정돼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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