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정부가 하반기에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에너지원별 발전량 비중에 대한 에너지 업계의 시선이 모인다. 정부는 온실가스, 미세먼지 문제 등을 풀기 위해 석탄발전 의존도를 낮추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확대하는 안을 고려한다. 전문가들은 수급 안정성, 환경성, 경제성, 기후 불확실성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가 9차 계획에서 에너지원별 비중 조정 및 대책을 면밀히 세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1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9차 계획의 초안을 조만간 환경부에 전할 예정이다. 기본계획은 2년 주기로 정부가 세우는 중·장기 전력수급 안정화 대책인데, 9차 계획엔 오는 2033년까지의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 등이 포함된다. 하반기에 최종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8번의 계획 발표와 달리 이번엔 처음으로 환경부의 전략 환경영향평가와 공청회 등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부가 9차 계획에서 2033년까지의 전체 발전량 대비 석탄과 LNG의 비중을 각각 20%대로 조정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지난 2017년 12월 산업부는 8차 계획을 통해 2017년 기준 각각 45.4%, 16.9%이던 석탄과 LNG 비중을 2030년까지 36.1%, 18.8%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신재생에너지는 16.9%에서 18.8%로, 원전은 30.3%에서 23.9%로 각각 조정하기로 했다.
9차 계획에서 LNG 비중이 20%대로 확대될 것이란 관측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정부의 탈원전(에너지 전환) 정책상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선 석탄 발전을 줄여야 하는 만큼 발전량 부족분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18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을 통해 기존 온실가스 해외감축분인 11.3%의 7%를 국내에서 줄이도록 했다. 석탄 및 원전 발전 비중을 키울 가능성은 작기 때문에 LNG 비중을 확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도 지난 1월 "9차 계획을 세울 때 온실가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과감한 석탄발전 감축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심은 석탄 비중만 대폭 축소할 것인지, 원전 비중도 함께 줄일 것인지에 몰린다. 만약 9차 계획에서 석탄과 원전 비중을 각각 20%대, 10%대로 조정하려면 8차 계획 대비 6.2%와 4%를 줄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석탄 감축이 원전 축소보단 수급상의 타격이 덜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로 ▲원전 폐쇄는 설계수명에 달려 있는 만큼 석탄 발전소 폐쇄보다 어렵고 ▲원자력이 석탄보다 단가가 싸고 수급 안전성이 더 높으며 ▲원전 발전을 급격히 줄이면 한국전력 의 재무 부담이 커질 것이란 사실 등을 들었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그나마 석탄 감축이 원전 축소보단 문제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석탄이 원전보단 단가가 비싸기 때문"이라며 "석탄을 확 줄이고 원전과 LNG를 소폭 늘리면 비용 부담을 감수한다는 전제 하에 수급 안정성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원전까지 줄이면 수급 안전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LNG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키우고 석탄과 원전은 줄일 것이라면 ▲수급 안정성 ▲환경성 ▲경제성 ▲기후 불확실성 등 4가지 문제를 풀 명확한 대안을 내놔야한다고 말한다.
우선 LNG 위주로 갔을 때 가격 및 수급 변동성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8차 계획 때부터 이미 전체의 20%로 치솟은 신재생에너지 중 하나인 태양광 에너지의 간헐성(날씨·계절 등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현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미지수다. 산유국의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널을 뛰는 유가 하락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LNG의 가격 변동성에 따른 수급 불안정성 확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석탄을 줄일 때 줄이더라도 일정량은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과거 정부가 에너지원 중 석탄과 원자력을 바탕에 깔아놓은 이유는 경제성뿐 아니라 수급 안정성도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울 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전기 수요 감소 같은 단기 변수보다 공급을 얼마나 안정적 할 수 있느냐를 더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LNG가 석탄보다 초미세먼지의 악영향을 줄일 수 있을 지에 관한 논란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환경부와 산업부, 에너지전환포럼이 국내 석탄발전소 61기와 LNG 발전소 59기의 오염물질 배출량(2018년 기준)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력량 1GWh(=100만㎾h) 제작 시 석탄발전은 평균 98.4㎏의 초미세먼지를 배출했지만 LNG 발전은 10.9㎏에 그쳤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유럽연합(EU)의 질소산화물 전환계수를 적용하면 석탄 발전의 초미세먼지 배출은 현재의 2배, LNG 발전의 배출은 현재의 8배로 높아질 수 있고 ▲LNG 연료 발전소들이 주로 대도시에 위치해 영향력이 클 수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경제성은 LNG 발전의 가장 큰 약점이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에 따르면 1월 기준 1kWh당 원자력의 정산단가는 65.2원, 유연탄은 96.1원, LNG는 120.5원이다. 당장의 단가도 LNG가 더 높지만, 원자력 단가 중 절반가량은 초기 원전 건설 비용을 반영한 것이라 앞으로 더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불확실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2017년 12월 8차 계획을 세울 때 기존의 1~7차 계획보다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에너지원별 변동 폭을 조정했다가 이듬해 2월 한파로 기업들에 수요감축 요청(급전 지시)을 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8차 계획을 세울 때 전력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핵심은 언제 어디서든 전기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2018년 겨울 급전지시 때 정부는 8차 계획 수립 과정에서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며 "기후의 예측 불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 온난화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에 2018년 겨울 이후 여름이 덜 더웠고 겨울은 더웠다고 해서 방심할 때가 아닌 만큼 정부는 기본계획에 극한기상 변수에 따른 블랙아웃(대정전) 대책을 반드시 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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