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국내 연구진이 3대 뇌질환 중 하나인 뇌전증(간질)으로 인한 발작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통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병 등 신경계 질환의 병리기전을 이해하는데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현택환 나노입자 연구단 단장(서울대 석좌교수)을 필두로 한 연구팀이 뇌 여러 영역의 포타슘이온(K+) 농도 변화를 동시에 측정하는 고감도 나노센서를 개발했다고 10일 밝혔다.
연구팀은 포타슘(칼륨)이온 농도를 실시간 측정해 뇌전증 발생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불규칙한 흥분으로 인해 발생한다. 뇌 흥분은 포타슘 이온을 바깥으로 내보내며 이완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포타슘이온이 빠져나오지 못하면 뇌 신경세포의 흥분상태가 유지되면서 뇌전증의 증상인 발작과 경련이 일어난다.
연구단은 포타슘이온의 농도 변화만 선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고감도 나노센서를 개발했다. 연구단은 포타슘 이온과 결합하면 녹색 형광을 내는 염료를 수 나노미터(nm) 크기의 구멍을 가진 실리카 나노입자 안에 넣었다. 이 실리카 나노입자는 세포막의 포타슘 채널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어, 포타슘만 선택적으로 통과시킨다. 연구진은 포타슘이온이 염료와 결합해 내는 형광의 세기를 토대로 포타슘이온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단은 센서를 실험용 쥐에 뇌 해마, 편도체, 대뇌피질에 주입해 실험했다. 이어 해마에 전기적 자극을 주고 고의적인 발작을 일으키도록 한 뒤, 포타슘이온 농도를 측정했다. 이 결과, 부분발작이 일어나는 경우 자극이 시작된 뇌 해마에서 편도체, 대뇌피질 순으로 순차적으로 농도가 증가했다. 반면 전신발작 때는 3개 부위 포타슘이온 농도가 동시에 증가하고 지속시간 역시 길어짐을 확인했다.
연구진의 이번 연구 결과는 포타슘이온의 농도만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재 뇌전증을 비롯한 신경세포의 활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뇌질환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 포타슘이온의 농도 변화를 감지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신경세포가 흥분할 때 세포막의 이온통로를 통해 이동하는 포타슘, 소듐(Na), 칼슘(Ca) 등 여러 이온 중 포타슘이온의 농도 변화만 선택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구팀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에서 실시간으로 뇌 신경세포 활성을 측정하는 것은 물론, 뇌의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농도 변화를 감시할 수 있어 발작의 정확한 발병기전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택환 단장은 "향후 뇌전증이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뇌질환들의 병리기전 규명과 진단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11일 새벽1시(한국시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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