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전 훈련 중인 미군의 모습[이미지출처= 미 육군 홈페이지/www.army.mil]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폐렴)의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갖가지 음모론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개중 이 신종 코로나가 중국 정부가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생물학무기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실제로 우한에 바이러스 연구소까지 있다보니 음모론이 더욱 크게 확산됐었습니다.
음모론의 중심에 선 우한 국립생물안전성연구소는 생물 안전성표준 4등급(BSL-4)에 해당하는 바이러스 전문 연구소입니다. BSL-4등급은 생물 안전성표준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연구소로 사람이나 동물에 중대한 병을 일으키는 에볼라바이러스나 천연두와 같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들도 연구할 수 있는 보안시설을 갖춘 곳을 뜻합니다. 지난해 3월 국제학술지 바이러스(Viruses)에 이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중국 내 박쥐에서 발생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논문을 게재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소는 생물학무기를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치료제나 백신 연구, 그리고 변종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해 연구하는 곳입니다. 설사 중국 내 비밀리에 운영 중인 생물학무기 연구소가 있다 한들, 우한과 같은 대도시에 공개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입장이죠. 중국은 1975년부터 유엔총회에서 발효된 생물무기금지협약(BWC) 가입국 중 하나입니다. 이 협약은 현재 전세계 174개국이 가입해있고, 이에따라 공개적으로 대놓고 생물학무기를 연구할 수는 없습니다.
BSL-4 등급 연구소 역시 중국이나 미국 등 몇몇 열강국에만 특별히 있는 실험실도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BSL-4 등급 실험실 역시 전 세계 19개국, 45곳에 설치돼있고, 우리나라도 질병관리본부 산하의 실험실이 있습니다. 지난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 유행 이후 많은 나라에서 바이러스 연구소를 신설했었죠.
중국 우한 국립생물안전성연구소 내부 모습[이미지출처=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www.cdc.gov]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가 중국의 생물학무기 개발 과정에서 유출됐다는 음모론에 대해 보도하면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음모론을 부인했습니다. 리처드 에브라이트 러트거즈 대학 생화학과 교수는 "바이러스의 게놈과 특성을 고려할 의도적으로 사람이 만들었다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말했고, 엘사 카니아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도 "생물학 무기는 목표지역에 한정해 효과를 발휘해야하지만 신종 코로나는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단 신종 코로나 자체가 생물학무기로 개발됐단 증거가 없다는 거죠.
더구나 인위적으로 만든 변종바이러스를 생물학 무기화에 성공한 사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바이러스는 보통 SF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무기로 자주 나오는 생물학무기로 표현되지만, 실제로 현대전 상황에서 바이러스를 생물학무기로 쓰는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무기화시키기 어려운 이유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던 바이러스는 실제 밖으로 분사됐을 때 상당수가 바로 상온에 노출되면서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보통 테러단체들이 사용한다고 알려진 생물학 무기가 탄저균에 국한되는 이유도 탄저균은 포자형태로 투사가 쉽고, 퍼진 직후에도 상온에서 쉽게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변종바이러스는 개발 과정에서 진짜 유출이라도 되면 사태가 걷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통제 불가능한 세균 및 바이러스 생물학무기보다는 핵무기 개발이 더 쉽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죠. 비용 또한 천문학적으로 들기 때문에 무기로서의 가성비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과거 구소련에서 에볼라바이러스를 비밀리에 생물학무기로 개발하고자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2014년 10월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에 크게 다뤄지기도 했었죠. 구소련에서 35년 동안 연구를 했지만, 통제에 어려움을 겪어 연구원이 감염돼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자꾸 발생했고, 변종 바이러스를 개발해도 모두 상온에서 바로 소멸돼버려 무기나 테러수단으로 쓰기엔 적합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져 계획자체가 폐기됐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에서 3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무서운 전염병이지만, 현재는 치료제가 있어 초기에 발견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알려져있다.[이미지출처=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www.cdc.gov]
그럼에도 음모론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과거 전 근대시대 전쟁에서 성공한 세균전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큰 공포심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유럽에서 3000만명 이상을 사망시켰던 흑사병이죠. 흑사병은 1346년 이탈리아 도시국가였던 제노바가 흑해 연안 일대 거점 항구인 카파성에서 몽골군과 싸우던 당시 퍼진 걸로 알려졌는데, 당시 몽골군은 흑사병에 걸려 죽은 사체를 투석기에 넣어 성안으로 던졌고, 카파성엔 흑사병이 만연하게 됐습니다. 이후 생존자들이 이탈리아로 돌아와 당시 유럽에 치료제가 전혀 알려져있지 않던 흑사병을 퍼뜨리면서 단 2년만에 3000만명 이상이 사망하게 된 것이죠.
또 하나는 1518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의 아즈텍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천연두를 퍼뜨렸던 것입니다. 당시 고작 1000여명 정도였던 스페인군이 결정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천연두에 대한 항체가 전혀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져있습니다. 2만년전 빙하기에 아시아 지역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간 이후 천연두 항체가 소실됐고, 아메리카에선 같은 유형의 전염병이 없다보니 치료제도 전무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무서운 흑사병이나 천연두 역시 오늘날에는 치료제가 이미 개발돼 초기에만 발견하면 쉽게 치료되는 병들이 됐습니다. 어찌보면 생화학무기에 대한 각종 음모론들이 시민들에게 전달해주는 충격과 공포야말로 바이러스 무기가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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