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분투기③-1] 스타트업 성장 파트너 'VC'

열정·가능성 있는 '떡잎'에 베팅…아이디어·신기술 스타트업 초기에 발굴

국내 벤처캐피털(VC)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는 2011년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사 우아한형제들에 총 3억원을 투자했다. 스마트폰 열풍으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가능성 있는 업체를 초기에 발굴하겠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강석흔 본엔젤스 대표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를 매주 만나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창업자들과의 만남도 주선했다. 재무, 법무, 홍보 등 회사 운영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도 했다. 8년 뒤 본엔젤스는 이 초기 투자로 약 1000배의 수익을 거두게 됐다.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는 본엔젤스의 지분 가치를 2993억원으로 평가했다.


본엔젤스의 우아한형제들 투자는 스타트업의 발굴과 육성에서 VC의 역할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VC의 초기 투자는 스타트업이 채 10년도 안 돼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 벤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고 이를 통해 거둬들인 투자 수익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신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스타트업을 다시 지원하는 재원이 됐다. 말 그대로 VC의 초기 투자가 선순환하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씨앗(SEED)의 역할을 한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중인 대표 VC 중 한 곳인 알토스벤처스를 찾았다. VC가 어떻게 될성 싶은 '떡잎'을 찾고 어떤 과정을 거쳐 투자를 집행하게 되는지 실제 투자 과정을 지켜보며 깐깐한 VC와 초기 투자를 위해 분투하는 스타트업들의 생생한 현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 특유의 사업 의지였다. VC들은 상상에 불과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끄집어 내기 위한 창업 멤버들의 분투를 지켜보며 투자를 결정한다. 알토스벤처스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도 기존 기업에 비해 기술, 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다"며 "당연하게 다가오는 난관들을 뚫고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열정을 가진 스타트업을 잘 선별하는 것이 VC의 목표"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발굴, 네트워킹 = 알토스벤처스가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국내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운영 중인 스타트업 '크리에이트립'에 30억원을 투자했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달 말이다. 이 투자의 시작은 5개월 전인 2019년 7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토스벤처스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또 다른 VC인 베이스인베스트먼트와의 미팅 중에 크리에이트립을 처음 알게 됐다.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다분히 우연도 작용했다. 베이스인베스트먼트의 강준열 파트너, 김승현 이사와 각각 다른 자리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공통적으로 크리에이트립의 가능성을 언급했던 것이다. 알토스는 바로 소개를 부탁했고 크리에이트립의 임혜민 대표를 만나게 됐다.


2016년 중순 중화권 여행객에게 국내 여행 정보를 공급하는 것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외국 여행객들이 현지인처럼 한국을 여행할 수 있도록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3년 만에 누적 예약 이용자 30만명을 넘어섰고 매달 170만명이 방문하는 등 본격적으로 시장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상태였다. 또 전년 대비 회원 수와 월간 이용자 수도 각각 4배와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알토스벤처스에게 크리에이트립은 단점과 장점이 비교적 명확한 회사였다. 단점은 아직 회사가 덜 알려져 있고 수익을 내고 있는 단계가 아니다 보니 인력이 부족한 상태라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서비스의 개선 속도가 회사의 목표만큼 빠르진 않았다. 장점은 매년 증가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숫자와 그 만큼 커지고 있는 시장 규모였다. 특히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을 한 서비스에 모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이미 월간 170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경쟁력이 될 것으로 판단됐다.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파트너는 "2018년 17조원을 기록한 국내 인바운드 여행시장에서 크리에이트립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시장을 빠르게 점유해 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알토스벤처스는 장점이 확실한 데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VC의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스타트업인 크리에이트립이 다양한 인력을 만날 계기가 없었을 뿐이지 일단 투자를 바탕으로 채용에 나서 경영진들의 비전이 공유되면 문제가 풀릴 것으로 본 것이다.


[스타트업 분투기③-1] 스타트업 성장 파트너 'VC' 원본보기 아이콘


◆투자를 결정한 것은 '열정' = 수십억원의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도 시장에선 허다했다. 마침 알토스벤처스 내부적으로 2019년 투자 속도가 너무 빨라 자제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던 상태이기도 했다. 게다가 크리에이트립은 통상적으로 알토스벤처스가 보는 스타트업의 단계보다 이른 편이었다.


투자 결정은 임혜민 대표와 만나 계속해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알토스벤처스는 시장이 크고 있고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다는 지표 외에도 시장을 잘 분석하고 있는 임 대표의 열정과 근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알토스벤처스는 '임 대표와 같이 일하면서 회사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는 판단이 서자 주저 없이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을 밟아 갔다. 박희은 파트너는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서비스로 업계 선두주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투자 과정에 난관도 있었다. 투자하고 싶어하는 다른 VC들이 있었던 것. 알토스벤처스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도 있었다. 그러면서 VC가 역으로 스타트업에 함께 하자고 구애하고 설득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투자 직전에 알토스벤처스는 임 대표에게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를 각각 소개해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모두 알토스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이다. 임 대표가 스타트업에서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앞서 걸어가고 있는 이들과 교류하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투자를 받은 후 임 대표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 수가 매년 빠르게 늘고 있어 정보의 중요성이 더 강조 되고 있다"며 "한국 방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여행 플랫폼인 동시에 국내 인바운드 여행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크리에이트립 사례에서 확인된 스타트업 투자의 핵심은 결국 '문제 해결 능력'으로 요약된다. 크리에이트립은 성장하는 국내 외국인 관광 시장에 제대로 된 정보 플랫폼이 없다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봤고, 알토스벤처스는 이 문제가 시장을 창출하고, 크리에이트립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만들어 갈 능력과 열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 능력과 의지를 투자자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얘기다. 스타트업 선배들의 조언도 이와 같다. 지난해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공유주방 스타트업 고스트키친의 최정이 대표는 "초기 회사일수록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을 투자자에게 얻어야 한다"며 "스타트업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얼마나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투자자에게 입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