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중국)=아시아경제 박지환 기자] 국내 보험업계가 시장포화와 초저금리, 손해율 상승 등으로 존폐기로에 놓였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진출이나 인슈어테크(보험+기술) 같은 새로운 먹거리 확보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가 됐다. 가까운 중국의 경우 이미 5년 전부터 13억명에 이르는 인구와 거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인슈어테크 관련 상품 개발에 속도를 내왔다. 가지지 못했다면 배워야 할 터. 아시아경제는 중국 보험사들의 인슈어테크 관련 움직임과 중국에 진출한 국내 보험사들의 현장을 찾아 성장정체에 직면한 보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길을 모색해 본다.
지난해 12월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짱스옌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할 때면 '백이면 백' 반송보험에 가입한다. 실물이 사진과 크게 달랐던 경험이 많아서다. 얼마전 온라인에서 구입한 겨울 스웨터도 진한 갈색 톤이라 생각한 것과 달리 실제 색상은 카키색에 가까워 반품을 결심했다. 국내에서는 비슷한 상황일 때 왕복 배송비를 부담해야 된다. 짱스옌씨는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문 때 미리 들어둔 반송보험이 품질 불만이나 변심으로 물건을 환불ㆍ교환하는 과정에 드는 비용을 모두 보장하기 때문이다. 보험료도 1위안(한화 166원)에 불과하다. 이 마저도 공짜로 제공하는 쇼핑몰 판매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50대 남성 리치앙씨는 최근 혈당 수치 결과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직접 측정한 혈당 수치를 중국 국민 소셜네트워크(SNS)인 위챗에 공유하고, 주기적으로 의사와 원격진료 상담을 받는다. 병원을 찾지 않아도 질병에 대한 진단, 치료법 등 의료전문가 상담을 손쉽게 받을 수 있다.
국내 보험사들이 신성장동력 확보에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중국 보험사들은 디지털 기술 도입을 통한 생활밀착형 보험 개발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보험(Insurance)에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인슈어테크(InsurTech)'로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을 바꿔놨다. 대표적인 보험사가 중국의 중안보험. 중안보험은 2013년 중국 빅테크인 알리바바, 텐센트, 핑안보험이 공동으로 설립한 중국 최대 온라인 손해보험사다. 지난 6년 동안 기존 보험업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생활밀착형 상품들로 보험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의 모든 상품은 100% 온라인으로만 판매한다.
◇생활 속 파고든 전략 통했다=중안보험은 IT와 실생활을 결합한 상품들로 신규 고객을 급격히 끌어모으고 있다. 중안보험의 지난해 11월 누적 수입보험료는 128억5000만위안(2조1310억원)에 달한다. 2014년 7억9000만위안(1312억원)에 비해 16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대표상품들은 생활밀착형에 집중돼 있다. '반송보험'이 대표적. 2014년 11월11일(광군제: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알리바바와 협력해 출시됐다. 중국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온라인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음을 인식해 판매자와 구매자간 생길 수 있는 반품 등의 각종 리스크를 보장한 게 주효했다.
린하이 중안보험 최고계리사는 "중국 사람들은 소득 수준에 비해 소비 의식이 강한 특성을 지닌다"면서 "최근 온라인쇼핑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반송보험 가입도 함께 따라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생활 소비관련 보험상품 매출이 지난해 상반기 전년 대비 82% 늘었는데 증가분 가운데 90% 이상을 반송보험이 차지했다"고 했다.
반송보험 손해율은 72% 수준. 적정 손해율 구간(70~80%) 내에서 관리되고 있다.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출발시간이 지연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항공기 지연보험도 인기다. 보험료는 날씨가 좋으면 싸게, 반대라면 비싸게 책정되는 식이다. 보험금은 위챗을 통해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이미 지급돼 있을 정도로 빠른 게 강점이다.
보험기간은 1년으로 짧지만 적은 보험료로 수천배의 보장을 약속하는 보험 상품도 있다. 중안보험의 건강보험 상품 중 하나인 존향일생(尊享一生)의 경우 47세 중국 남성이 연간 81위안(약 1만3400원)만 내면 암에 대한 치료비와 진단비 등을 합쳐 총 600만위안(9억9500만원) 한도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인슈어테크가 승부 갈랐다=중안보험이 소비자에게 맞춤화된 상품들을 내놓을 수 있는 경쟁력은 자본력과 데이터 축적, 기술력에 있다. 중안보험의 인력 구성이 전통 보험사들과 차이점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위 핀테크 회사라고 불릴만도 하다. 중안보험은 2015년 글로벌 컨설팅업체 KPMG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핀테크 금융사 중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린하이 계리사는 "매년 기술 부분에 대한 투자를 5% 이상 늘려가고 있다"면서 "전체 직원 2800여명 가운데 IT 관련 인력이 50% 이상인 1476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현지 진출 국내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중안보험은 기존 보험 상품에 고객 생활 데이터를 접목해 상상하는 것들을 바로 상품화하고 있고, 언더라이팅과 보상 등에 있어서도 IT 기술을 활용해 경비 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내에서는 국내와 달리 헬스케어 부분의 성장 속도도 가파르다. 국내에서는 보험사가 헬스케어 서비스를 하고 싶어도 의료정보 제공 동의 등 각 업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헬스케어 부문 확대에 한계가 있다. 린하이 계리사는 "고객이 보험가입 때 의료정보 제공 동의만 거쳤다면 1068곳에 달하는 의료 기관들과 원격진료 후 처방 등 원스톱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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