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9일 오전 0시4분께 광주 서구 한 오피스텔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발견하고 뒤따라가 여성 집 안에 침입하려는 김모씨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사진=연합뉴스TV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혼자 사는 여성을 상대로 한 범행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해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해당 범행의 경우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중범죄라고 지적했다.
광주지법 형사11부(송각엽 부장판사) 주거침입, 강제추행, 특수강도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39)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6월19일 오전 0시4분께 광주 서구 한 오피스텔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발견하고 뒤따라가 "들여보내 달라. 재워달라"며 집 현관문을 못 닫게 붙들고 침입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김 씨는 피해자를 부축하는 척 접근해 현관문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엿보고 메모했다. 이후 건물 밖을 살피고 다시 돌아와 피해자가 잠들었는지 확인하려 초인종을 누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지난 5월30일 새벽 술 취해 걸어가던 여성을 뒤따라가 거리에서 추행하고, 같은 달 25일 새벽 PC방에서 종업원에게 수면제 성분의 약을 탄 음료수를 건네 쓰러지게 한 뒤 폐쇄회로(CC)TV 본체와 현금 3만5천원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A(29) 씨는 지난 10월9일 새벽 5시30분께 혼자 사는 여성의 원룸에 잇따라 침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남성은 이보다 앞선 새벽 3시30분 귀가하던 여성의 뒤를 쫓아 주변의 또 다른 원룸 건물에 침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귀가하는 여성을 몰래 쫓아가 집까지 따라 침입하거나 침입하려는 행위, 또는 혼자 있는 여성을 상대로 강제 추행하는 행위는 모두 범행 대상을 특정하고 범죄를 저지른 일종의 스토킹 범죄다.
스토킹 범죄에서 범행유형은 강제추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14년 1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2년간 받은 상담 2700여 건 중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에 의한 성추행, 성희롱, 스토킹 등 사례 123건을 분석한 결과 추행이 73%(90건)로 가장 많았다. 범행 장소는 길거리가 37건으로 가장 많았고, 범죄 경험 장소는 공중화장실, 술집, 엘리베이터, 놀이터, 가해자 차 등 다양했다.
종합하면 성폭력을 동반하는 스토킹 범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는 사실상 여성이 가장 많고, 특히 혼자 사는 여성일 경우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높았다.
지난달 7일 한민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2년마다 실시된 전국범죄피해조사 자료를 통합.분석해 발표한 '스토킹 피해현황과 안전대책의 방향'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피해가 발생할 위험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13.266배, 여성인 경우 22.011배, 1인 가구인 경우 4.651배 높아졌다.
관련해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7년 전국에서 발생한 주거침입 성폭력은 총 305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주거침입 강간'은 총 105건으로 전체 주거침입 성범죄 사건의 약 34%를 차지했다.
특히 주거침입 성범죄로 검거된 이들의 성별은 99.3%가 남성으로 나타났다. 결국 혼자 사는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관련 통계나 수치로 입증 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처벌 수위다.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5만원 미만 과료형으로 처벌에 불과하다.
해당 범죄는 지속해서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으로 처벌받은 건수는 2014년 300건에서 지난해 544건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6월부터 스토킹에 대한 112 신고 건수 집계 기준으로 보면 1년 동안 접수된 건수는 5400여건에 달했다.
전문가는 이런 범행에 대해 모두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지난달 5월 MBC '심인보의 시선집중'에서 "모르는 사람을 쫓아가는 게 스토킹이다. 미국 같으면 스토킹 범죄다. 여자랑 아무 관계가 없는데 밑도 끝도 없이 침입하려고 가서 문 앞에서 지키고 앉은 거지 않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지금 스토킹 방지법이 없다. 지금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기껏해야 벌금형을 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 정도를 주면 다시 돌아다니니까 다시 시도하거나 보복하면 그다음에는 누가 막아줄 거냐. 이게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외국의 경우 스토킹은 중범이다. 영미법 국가는 만약에 이런 식으로 굉장히 극도로 공포심을 느낄 만한 성범죄 목적이 추정되는 이런 스토킹 경우 징역형이 나올 수 있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안에도 보면 지속적인 남녀관계, 지속적인 관계에서의 스토킹만 범죄로 정의해놨지 사실 지금 이런 식으로 성범죄자들이 시도하는 스토킹을 스토킹 범죄에 포함시켜놓지 않았다"라며 "여성의 뒤를 밟는 행위, 방과 후에 여자 아이들 뒤를 밟는 행위 그걸 전부 처벌하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살인이든 뭐 성폭력이든 일단 아무런 관계도 없는 목표물을 쫓아가는 거 아니냐. 사냥을 하려면 사냥감을 쫓아가는 행위가 사냥감을 죽이기 전에 일어나는 건데 그런 종류의 행위 자체를 범죄로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면 벌금형 때리고 끝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런 법안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들은 범죄에 노출되지 않을까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를 보면 사회안전에 여성 응답자의 35.4%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률은 27%였다.
범죄 발생 불안감에 대해서는 여성이 57%로 남성(44.5%)보다 12.5%포인트 높았다. 여성들이 꼽은 지난해 한국 사회의 불안 요인도 범죄 발생(26.1%), 국가 안보(16.3%), 환경오염(14.3%)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여성재단은 지난 7월 보고서에서 "혼자 사는 여성들은 창문, 베란다 등을 통한 외부침입이 우려되는데도 설치비용 부담, 집주인과의 문제 등으로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 거주지에 CCTV, 방범창 등 안전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등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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