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인간의 장(腸)은 소화기관일뿐 아니라 체중과 식욕, 수면, 나아가 정신건강까지 관리합니다. 정확하게는 장 속에 살고 있는 수천만의 미생물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내 미생물들은 인체가 음식물로부터 영양분을 얻는 것부터 인체의 면역체계 관리, 건강을 지키는 일까지 많은 일을 담당합니다. 그래서 장내 미생물은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따라 해로운 상태로 바뀌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심장병과 비만, 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반면, 장내 미생물군을 인체에 유리하도록 바꾸면 앓고 있는 질병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은 숙주(인체)의 식습관을 조종해 건강한 몸으로 이끌기 위해 선별적인 압력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장내 미생물이 숙주의 건강을 인질로 잡고 건강한 음식을 먹게끔 몸에 악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지요.
장내 미생물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인체가 소화하지 못한 탄수화물을 분해해 단쇄지방산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단쇄지방산은 교감신경에 있는 GPR41수용체를 활성화시킵니다. 음식 섭취 후 에너지가 지나치면 GPR41이 교감신경을 자극해 에너지 소비를 늘리고, 부족하면 에너지 소비를 줄입니다. 인체의 대사 균형을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성공하거나, 실패하게 만드는 주범도 장내 미생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체 내 미생물의 90%는 페르미쿠테스(Firmicutes)와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로 이뤄져 있습니다. 페르미쿠테스는 비만을 유발하는 반면 박테로이데테스는 비만을 막는 균입니다. 다이어트의 성공 여부는 박테로이데테스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이 기분을 조절하기도 합니다. 환자들이 가진 장내 미생물을 실험용 쥐에게 옮겼을 때 그 쥐들 역시 기분이 침체된 듯 한 행동을 보였고, 반면 건강한 사람들의 박테리아를 받은 쥐들은 평상시와 같았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이 사람의 행동을 조종하는 두뇌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뇌와 장은 실제로 수많은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돼 있는데 각종 화학물질과 호르몬이 복잡한 신경 도로를 따라 체내 여기저기로 이동합니다. 이동한 화학물질과 호르몬이 배고플 때, 스트레스 받을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인체의 반응을 조종한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장내 미생물군을 인위적으로 바꾸면 질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레자 가디리 교수팀은 최근 쥐의 해로운 장내 미생물군을 더욱 건강하게 바꾸거나 리모델링할 수 있는 새로운 분자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장내 미생물을 인위적으로 바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레자 가디리 박사(사진 왼쪽)와 소피 로브너 연구원.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원본보기 아이콘서로 연결된 아미노산의 짧은 단백질 사슬인 '펩타이드(peptide)'를 이용해 장내 미생물군에서 특정 박테리아 종들의 성장을 조절해 더 많은 유익균들이 장에 서식하게 만든다는 것이 가디리 교수팀의 방식입니다.
가디리 교수는 "장내 미생물군을 의도적으로 리모델링하고 불건강한 장을 더욱 건강한 장으로 전환시키는 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각 개인들의 장을 분석해 궁극적으로 치료법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아도 개인의 노력에 따라 장내 미생물은 인체에 유리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가공하지 않은 음식과 풍부한 식이섬유를 섭취하고, 적절한 운동을 하면서 알코올 섭취를 최대한 피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도전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장내 미생물의 힘이 그 만큼 세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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