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한일경제전쟁과 게임의 재발견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경제전쟁이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의 한국 배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수출 관리 규정을 개정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의 필수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불량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99.999% 이상의 초고순도 불화수소가 요구된다. 이들 제품공급이 중단된다면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이 멈출 수도 있다. 삼성전자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소재 산업에 투자해 왔다.

한 3년 전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한 얘기다. 최지성 부회장이 일본을 다녀온 후 소재에 대한 R&D 연구소 설립과 독자적 역량 확보를 사내에 긴급 지시했다. 반도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너무 높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소재와 부품, 반도체 제조장비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소재나 부품산업은 전형적 '점진적 역량축적형' 산업이기 때문에 기술축적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독일이나 일본 같은 국가에서, 한우물만 파온 강소형 중소기업에 이런 역량을 가진 기업이 많은 이유다.


소재와 부품이 한국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일본의 추가 공격이 예상되는 화학, 공작기계, 전기배터리, 자동차 등 한국의 많은 산업이 위기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이런 일본의 공세에 전혀 영향 받지 않는 산업이 있다. 영향은커녕 일본 정부에 '제품'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숙이는 산업이 있다. 바로 게임이다. 게임 산업은 수입보다 수출이 압도적으로 많다. 2001년 1억3047만달러(약 1582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한국 게임 수출액은 매년 규모를 키워 2017년대에는 45배 이상인 60억달러(약 7조2000억원)까지 늘었다. 반면 수입은 수출의 4.4% 수준인 2600만달러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게임강국인 일본으로의 수출도 약 1조원 규모로 전체 수출 비중의 12.2%를 차지한다.


게임은 일본의 소재나 부품,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망가(만화) 등에서 지식재산권(IP)을 수입해 게임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IP가 없어도 문제되는 것은 없다. 오히려 일본 IP의 가치를 몇 배로 올리는 '인챈트(게임아이템의 성능 향상)'를 일으키는 것이 한국 게임이다.


한국 게임은 일본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넥슨을 비롯해 엔씨소프트, 넷마블 같은 게임 대기업은 물론 라인 같은 회사도 일본시장에서 맹활약 중이다. 라인의 2019년 게임 관련 예상 매출은 5000억원에 달한다.


반대로 한국시장에서 일본게임은 그다지 존재감이 없다. 바로 이런 한일 게임 산업의 '격차' 때문에 한국의 게임사들은 일본 내 한국 게임 불매운동을 경계해 몸을 낮추고 있다. 이렇듯 그 존재가치를 마땅히 인정 받아야 할 게임산업은 국내서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대표적 예인 게임 질병코드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국 대표 주요 산업들이 일본의 영향권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게임에 대한 산업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가치를 인정해 줘야 할 때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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