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광고지만 설레는 건 왜일까요? 이재민님 무더운 주말 XXX에 방문하셔서 더위를 싹 날리세요. www.XXX.com"
3년전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졌던 이재민(31ㆍ가명)씨는 최근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 문자 때문에 괴롭다. 이씨는 수백만원을 날린 후에야 어렵사리 스포츠 도박을 끊었지만 당시 등록된 핸드폰 번호 탓에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문자를 계속 받고 있다. 광고문자를 보내는 번호를 매번 수신차단하고 있지만 다른 발신번호로 광고 문자는 계속 날아온다.
이씨는 광고를 보면 "'이번엔 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도박은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 해외 카지노, 강원랜드, 경륜장 등을 굳이 찾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를 띄우고 인터넷방송 진행자(BJ)들은 홍보에 나선다.
정부와 경찰은 올해 초 사이버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특별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첨단화, 점조직화돼 가고 있는 불법 사이버 도박에 대한 단속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9538건이었던 사이버도박 발생 건수는 2017년 5130건, 2018년 3012건으로 줄어들었다. 검거 건수 또한 2016년 9394건, 2017년 5080건, 2018년 2947건으로 감소했다. 사이버도박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짐에도 범죄 발생ㆍ검거 건수가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사이버도박 관련 수사가 어려워졌음을 보여준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도박조직 본사는 관련 규제 법령이 없거나 해당국가 내부 사정으로 검거가 쉽지 않은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며 "최근에는 해외 본사에도 '바지 사장'을 앉혀 놓고 점조직으로 운영해 검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불법도박 시장의 총 매출은 연 83조7800억여원에 달한다. 이 돈은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1년간 쓰는 의료비 총액의 두 배가 넘고, 국가 예산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이 중 사이버 도박 시장규모는 25조1000억원으로 전체 불법도박의 30.1%를 차지하고, 비중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관계자는 "치료기관을 찾는 도박중독자 10명 중 8명은 사이버도박에 빠져 있다"며 "갈수록 사이버도박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개인 방송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SNS 상의 유명인)'들이 불법 사이버 도박을 방송 콘텐츠로 활용하고 홍보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방송은 '섯다'나 '홀짝' 등 사행성이 짙은 게임을 중계하며 직접 도박 사이트를 홍보하기도 한다. 아예 특정 도박 사이트를 홍보하며 "계좌정보와 연락처만 써넣으면 참여할 수 있다"고 참여를 부추긴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서울 구로경찰서는 시청자에게 돈을 받아 온라인 도박게임을 대신하며 방송하고, 사이버머니 불법 환전을 홍보한 BJ 최모(35)씨와 이모(29)씨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과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넘기기도 했다.
인플루언서들에게 쉽게 영향을 받는 청소년의 도박 중독도 우려된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전국 중ㆍ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의 도박문제 위험집단 비율은 2015년 5.1%보다 1.3%포인트 증가한 6.4%로 나타났다. 한 번이라도 돈내기 게임을 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47.8%로 나타나 2015년보다 5.7%포인트 증가했다.
정완 사이버범죄연구회장(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도박 행위자는 자금 마련을 위해 공금을 횡령하거나 절도, 강도, 인터넷사기 등 2차 범죄에 나서기도 한다"며 "최근에는 청소년들도 사이버도박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데 유관기관이 나서 도박중독 치유와 재활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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