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위기' 강조하면 당장에 나올 해법에 골몰
경제협력·제재완화 등 목소리 커지게 돼
트럼프, 재선 위해 '애니딜'도 불사할 것"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절대 핵을 포기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로 이런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이 핵 포기 의사가 있다'로 간주하게 되면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협상에 골몰하게 되며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핵보유국이 된 북한'이라는 것이다. 이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제재 강화 밖에 없다는게 태 전 공사의 지적이다. 아울러 탄탄한 한미공조는 물론, 일본과의 전략적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아시아경제와의 대담에서 태 전 공사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최근의 북한 비핵화 이슈에 대한 자신의 입장부터 밝혔다.
▲제가 대한민국으로 오고 나서 한국 언론도 보고 북한 언론도 보고 미국 언론도 다 본다. 이상한 것은 한국 언론만 유독 '북핵 위기'라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남북·미 중에서 '위기'라는 표현을 하는 건 한국밖에 없다. '위기' 상황을 부추기는 어떤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북핵 위기론'은 오히려 북핵 문제 해결을 망치고 있다. 정녕 북핵 위기라면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자본이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안정돼 있다. 국민들조차도 위기로 안 받아들이는데 누군가가 위기라고 이야기한다.
북한 비핵화의 진영은 두 개로 갈린다. 한 쪽은 '비핵화 대가로 북한에 등가물을 잘 설정하면 된다'는 쪽이다. 다른 한 쪽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보고, 장기적으로 봐서 제재를 강화해나가자'고 한다. '위기'를 강조하다 보면 두 의견 중에서 북한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게 당장에 경제협력을 하자, 제재를 풀어보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합리적 접근, 현실에 입각한 접근을 해야 한다.
▲가장 먼저 '북한이 제재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지금 수준의 제재하에서 북한은 우리 생각보다 상당기간 버틸 것이라 본다. '북한이 뭘 생각하고 있을까'도 중요하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인 지난 12일 노동신문이 1면에 논설을 발표했다. 거기에 김정은의 본심이 담겼다. 이 기사는 액자 이미지 틀에 담아 인쇄됐다. 이건 일개 신문의 보도가 아니라, 수령의 목소리이니 잘 들으라는 의미이다.
기사는 현 북·미 대결 국면을 핵을 독점하려는 강대국과, 그 독점을 깨려는 북한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들은 핵무기를 가졌고, 김정은이 핵무기를 만들어서 대대손손 전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대대손손 핵을 갖겠다는 얘기인 것이다. 북한 체제가 존속하는 한 절대 핵을 포기 않는다. 협상을 하더라도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시스템 콜랩스(붕괴) 없이 북한 핵포기는 없다. 겉으로는 북한의 목을 조이지 하지 않고 풀어주려고 하면서도 밑으로는 목을 조여서 김정은 정권을 힘든 상태로 몰고 가야만 한다.
▲친서를 보낸 걸 '협상판을 깨지 않기 위해'라고 해석하는데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북한이 노리는 것은 대북 제재 강화를 막는 것이다. 북한은 그걸 제일 두려워한다.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한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제재의 강화를 멈춰 세운 것이다. 북한은 현 수준의 제재는 버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평행선으로 가고 있다. 친서를 보내고 관계를 유지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확대는 안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여러 미국 전문가들과 만났다. 북한이 협상장에서 유엔(UN) 5개 제재를 풀어달라고 했을 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장관은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재가 효과 있다, 더 강화하자. 그럼 우리 안을 북한이 그대로 접수할 거다'라고 했다. 미 재무부도 140개 추가 제재안을 더 준비했다고 들었다. 미국이 유엔 안보리 제재와 별도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제재가 140개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걸 트럼프 대통령이 막았다고 한다.
▲재선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포괄적 합의, 즉각이행'이라는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이 입장은 대선 운동 시작 전까진 바뀌지 않는다. 아직 재선 레이스까지는 시간이 있다. 지금 구도로 가다가, 내년 초쯤 대선 캠페인과 맞물려 북한과 딜을 맺으려고 할 것이다.
▲올해 안이나 혹은 내년 초까지,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은 꼭 만난다. 친서가 갔다는 건 뉴욕 채널을 통해 백악관까지 편지가 가고 있고, 물밑에선 밀고 당기는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태로 쭉 가다가 연말과 내년 초에는 3차 회담을 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어떤 딜이라도 맺을 거다.
▲우리에게는 3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 회담보다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경계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북한이 가진 핵 자산은 과거핵, 현재핵, 미래핵으로 나뉜다. 현재핵은 완성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미국은 싱가포르에서도 하노이에서도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얘기 안 했다.
그저 과거핵, 핵물질 생산에 이용된 5개 시설 해체를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3차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요구했던 5개 핵시설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럼 트럼프 대통령은 딜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딜이 이뤄지면 북한이 지금 당장에 갖고 있는 현재 핵과 ICBM을 언제 열릴지 모르는 4차 북·미 정상회담할 때까지 보유할 수 있는 합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또 하나의 성과를 거두게 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심이 없다. 재선을 위해 무엇이라도 딜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장된 비핵화'를 막아야 한다.
▲(미국과)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3차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물론 좋다. 그러나 '그때 뭘 할 건데'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 목표 없이 '만나야 한다'고만 막연히 얘기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필요한 '애니딜'만을 한다. 그건 우리에게 최악이다.
▲김 위원장은 어떤 얘기를 하든 안 받아들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가기 전에 꼭 현재 핵무기에 우선 순위를 둬서 먼저 다루라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한일 관계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 김일성 전 주석이 생전에 노동당 간부들에게 대남 문제에서 한국의 한미, 한일관계는 '갓의 끈'이라고 했다. 갓을 고정시키는 두 끈 중에 하나만 잘라도 갓을 못 쓰게 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미, 한일 관계를 어떻게 벌어지게 하느냐에 집중한다. 우리 정부는 탄탄한 한미동맹과 전략적 한일관계를 잘 유지하며 국제적 대북공조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북한은 일본에 큰 불신을 갖고 있다. 2002년 9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에서 만나 합의를 했다. 당시 일본은 북한이 납치자 문제를 인정하고 돌려보내면 100억달러 경제원조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북한은 납치를 사과하고 5명을 돌려 보냈지만 1억달러도 안 들어왔다.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거다.
그런데 어떤 밀약을 통해 북·일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미국이다. 현재 한일 관계는 좋지 않으니 일본이 우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다면 (북·일 회담이) 열릴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을 '굴욕'으로 보일 정도로 접대를 했는데,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국이 개성공단 열겠다, 금강산 관광 재개하겠다 외치지만 안 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을 잘 구슬려 북한에 접근해서 뭔가를 이뤄내면 한국은 난처한 입장에 빠진다. 북한이 '한국이 못하는 걸 일본은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일 관계를 더 긴밀하게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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