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脫원전 성토장된 원자력 회갑잔치

[서귀포=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원자력 산업의 성장 발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이희용 제일파트너스 대표ㆍ전 한국전력 원전수출본부장)


한국 원자력 역사 60년을 맞아 제주서 열린 한국원자력연차대회 이틀째인 22일 원자력 학계와 산업계에서 탈(脫)원전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자력연차대회는 매년 국내외 원자력 관련 인사들이 모이는 국내 최대의 원자력 국제행사다. 특히 올해는 한국 원자력 환갑을 기념하는 잔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연차대회는 서로를 격려하며 원전 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나누는 대신 불안함만 오갔다. 웃기 힘든 현재 한국의 원자력 산업 상황 탓이다. 참석자 수도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 지난해엔 110개사에서 700여명이 참석했는데 올해는 40개사ㆍ500명만 참석했다. 총 210석인 강연장 곳곳은 언제나 빈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둘째 날 오전 진행된 '원전수출과 산업활성화' 세션의 좌장을 맡은 이 대표가 먼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탈원전)을 겨냥한 날 선 발언을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수출 전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오후 진행된 기념식에서 정부의 탈원전을 비난하는 발언들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명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분명한 것은 원자력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며 "간헐적이고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될수록 원자력의 가치는 재조명될 것으로 개인적으로 확신한다"고 했지만 청중은 별다른 호응을 하지 않았다. 한 연차대회 참석자는 "이미 산업계가 다 죽어 반대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다"며 "게다가 이젠 정부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내 원전 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는 이번 연차대회를 찾은 국외 인사들의 입에서도 나왔다. 데니스 무라브예프 러시아 테넥스 한국대표는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다음 세대에게서 소중한 미래 기술을 훔치는 짓"이라고 평가했다. 마리아 코르스닉 미국원자력협회장은 "한국이 국내 원전을 유지하면서 다른 나라에 지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기대한다"며 "한국 국민과 정부가 원자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투자를 많이 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코르스닉 회장은 지속 가능성과 청정함, 경제성 등의 강점을 가진 원전이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가치를 입증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한국은 에너지 소비자의 선택이 아닌 정부 정책에 따라 탈원전이 진행되고 있다. 원전이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할 기회 자체가 없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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