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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감정선 끝까지 끌고 가는 디테일…장르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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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와 아이디어 어우러진 계산된 표현…철저한 사전조사로 회의적 시각 불식
적절한 리듬·패턴 찾아내 제작비 문제 해결 "제작비 많다고 더 좋은 작품 나오는 것 아냐"

관객 감정선 끝까지 끌고 가는 디테일…장르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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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기자들이 좋다고 하면 관객이 안 들어온다던데..." 봉준호 감독이 영화 '살인의 추억'을 공개하고 꺼낸 말이다. 동석한 송강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봉준호 감독은 9회말 2아웃 타석에 들어선 충무로의 4번 타자입니다." 평단과 산업의 환영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은 현실이 됐다. 살인의 추억은 관객 525만5376명을 모았다. 이어 발표한 '괴물(1301만9740명)'과 '마더(301만3523명)', '설국열차(934만9991명)'도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봉 감독은 대중성을 놓치는 법이 없다. 긴장을 유발하면서 다양한 영화적 재미를 삽입한다. 은유와 아이디어가 어우러진 계산된 표현이다. 자극적인 폭력 장면을 피하는 대신 의외성을 배치해 유머와 페이소스를 전한다. 그는 "무겁고 정치적인 주제를 심각하게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영화를 존중한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렇게 유머와 코미디가 섞여 있는 것이 좋다. 관객이 터뜨리는 웃음 속에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있는 느낌을 좋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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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전달받고 "저에게 큰 영감을 준 앙리 조르주 클루조와 클로드 샤브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클루조는 추리영화의 세계를 넓힌 명감독이다. 긴장을 묵직하게 유지하면서 디테일을 치밀하게 부각해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자주 비견된다. 대담한 성격 묘사와 충격적인 표현으로도 유명하다. 봉 감독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공포의 보수(1953년)'가 대표적이다. 트럭으로 질소를 운반하는 주인공 네 명의 심리를 담대하면서도 세밀하게 묘사한다.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일으킨다. 봉 감독이 연출한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에서 유발되는 그것과 흡사하다.


샤브롤은 히치콕식의 서스펜스 문법을 프랑스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누벨바그의 거장이다. 주로 중산층 인물들의 내면에 담긴 강박간념과 성적 억압을 세부적으로 파헤쳤다. 봉 감독은 '야수의 최후', '붉은 결혼식' 등을 수작으로 꼽는다. 작가주의적 감수성과 장르 영화의 특성을 살리는 연출 스타일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자기고백이다. 하지만 칸국제영화제에서 봉 감독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준 로빈 캉필로 감독은 '기생충'에 대해 "히치콕 감독의 영화 경지에 오른 작품"이라고 했다. "장르영화도 정치영화도 아니면서 사회적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간다. 관객의 감정선을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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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사전조사가 원동력이다.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확인하며 문제의 근원에 다가간다. 살인의 추억의 경우 1980년대 신문들을 들추면서 국가와 사회가 민생치안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 기억 속의 1980년대는 '동원의 시대'였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외부 행사에 신경을 많이 썼죠. 형사의 무능함보다는 시대의 조악함 때문에 범인을 못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봉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습작 시절부터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다.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과 '지리멸렬'은 밴쿠버와 홍콩영화제에 초청됐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홍콩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과 뮌헨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시네필의 꿈을 키워준 매개체는 극장이 아닌 텔레비전이었다. 주말의 명화나 AFKN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보며 신선한 자극을 받았고, 무한한 크리에이티브의 양분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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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아이디어를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충고와 비판을 받았다. 살인의 추억의 경우 미제로 끝난 연쇄 살인사건을 조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에 휩싸였다. 신문과 뉴스에 지겹게 나온 사건을 누가 영화로 보겠느냐는 걱정이었다. 괴물을 준비할 때는 괴수가 등장하는 블록버스터의 제작에 많은 이들이 회의적이었다. 그는 제작비 110억원으로 꿈을 실현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좋은 아이디어로 적절한 리듬과 패턴을 찾아내 제작비 문제를 해결했다.


"1970년대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는 당시 기술과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아이디어로 해결했다. 죠스의 시선으로 해변의 관광객을 마치 먹잇감을 찾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카메라를 죠스의 눈처럼 쓰는 방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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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가 많다고 해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촬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 노동 환경 개선까지 실천한다. 그는 지난 17일 영국 스크린 인터내셔널에 "기생충 촬영장에서 아역배우를 보호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CG)을 이용하고, 주52시간 근무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창문 너머 아이가 노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는데, 당시 한국에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어서 아역 배우에게 무리였다. 너무 위험한 일이라 판단해 결국 블루스크린을 이용했다. 영화에 밤 촬영도 많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아이들이 먼저 촬영할 수 있도록 송강호 등 배우들이 다같이 호흡을 맞췄다."


따뜻한 배려와 노동 환경 개선은 오히려 제작비를 절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생충은 100회 이상 촬영한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과 달리 77회차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철저한 준비와 디테일의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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