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칸 영화제, 봉준호 '황금종려상' 수상
영화 <기생충> 심사위원, 만장일치 쾌거
봉준호, 어릴 때 소심하고 상상하기 좋아해
운명의 짝 '송강호' 와 한국 사회 계급 영화로 그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포토콜에서 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프랑스어 연설은 준비 못 했지만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놀라운 모험이었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저와 함께해준 아티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배우들께 감사드린다."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올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다. 봉 감독은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 송강호의 소감을 듣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대에 오른 주연 배우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들께 이 영광을 바치겠다"고 한국의 배우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봉준호와 송강호 두 사람은 <기생충>에 앞서 <설국열차> , <괴물> 등으로 호흡을 맞췄다. 봉 감독이 왜 이런 성격의 영화를 찍었고, 그의 유년 시절은 어땠는지, 송강호는 왜 봉 감독 영화에 단골 출연하는지 등 그의 영화를 통해 살펴봤다.
소심한 소년 봉준호, 상상으로 무엇이든 그리다
"열두살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손으로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감사하다" - 봉준호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에서 스스로 소심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그는 유년 시절 친구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이 시간을 상상력으로 채웠고, 그의 이런 상상력은 결국 영화 창작의 자양분으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의 취미는 중고 비디오점들을 돌아다니며 희귀한 외국영화들을 찾아 보는 것이었다.
"스토리보드를 미리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현장에 못 나가거든요. 콘티 없이 현장에 가는 건 마치 바지를 안 입고 팬티만 입고 시부야 한복판에 서있는 그런 느낌이죠" - 봉준호 X 고레에다 히로카즈 거장들의 대화 2017.07.05
봉 감독이 스토리보드, 콘티 없이 현장에 나가지 않는 것은 그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그는 직접 콘티를 제작한다. 그의 이런 모습 역시 유년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보내던 시간에서 비롯됐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을 전공했는데, 어린 시절 봉준호는 아버지가 안 계실 때 몰래 들어가 디자인 관련 외국 서적들을 보면서 매일 그림을 그렸다. 이는 훗날 그가 영화를 만드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 친구들과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든다. 이곳에서 1993년 6mm카메라로 찍은 <백색인>을 연출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백색인은 '화이트 칼라' 주인공이 달동네를 헤매게 되고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줍게 되면서 전개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거의 대사 없이 이미지와 배우의 액션으로 진행되는 실험적 작품이었다. 계급 문제를 직접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당시 단편영화의 스타일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사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계급…영화로 만들다
한국 사회 계급 문제에 대해 봉 감독은 꾸준히 자기 문법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이런 방식은 훗날 <설국열차>,<기생충> 등으로 나타난다.
영화평론가 강성률은 '한국영화, 중독과 해독'이라는 책에서 "결국 봉준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의 문제"라고 평론하기도 했다.
졸업 후 그는 충무로에서 경력을 쌓는다. 1996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연출부를 거쳐 1997년 <모텔 선인장> 조연출로 현장을 경험했고, 1999년엔 <유령>의 각본을 썼다.
그의 16㎜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과 <지리멸렬>은 94년 밴쿠버와 홍콩 영화제에 초청받는가 하면 2000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홍콩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과 뮌헨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차지하는 등 영화감독 봉준호 이름 석자를 대중에 각인 시킨다.
봉 감독은 이후 2003년 송강호, 김상경 주연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명실상부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는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른다.
한편 봉 감독은 지난 2009년 JTBC '뉴스룸'을 통해 자신의 <플란다스의 개> 를 찾아준 관객 3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끝에 영상 편지를 띄어 "어디 계십니까 지금 뵙고 싶은 심정입니다"라고 말했다.
감독 봉준호·배우 송강호, 그들만의 영화 세계를 만들다
<살인의 추억> 주연 배우 송강호와 봉 감독의 인연 역시 유명하다.
봉 감독이 이 영화로 송강호를 캐스팅하려 할 때 송강호는 이른바 '스타 배우'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당시 변변한 흥행 영화 없는 봉 감독 입장에서는 캐스팅 제의 자체가 망설여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송강호는 봉 감독의 연락을 받고 바로 출연을 수락했다.
송강호는 과거 봉준호 감독이 조감독을 맡았던 영화의 단역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 당시 그를 알아본 봉준호는 그에게 '언젠가 꼭 함께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직접 전했고 이에 감동한 송강호는 언젠가 출연 제의가 오면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바로 출연을 결심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나 찍은 이 영화는 대종상, 춘사영화예술제, 영평상,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감독상,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인 은조개상,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상을 수상, 송강호는 대종상과 춘사영화예술제,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전국 526만 관객동원으로 2004년도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 역대한국영화흥행순위 13위(2018)에 올랐다.
이후 봉준호는 2006년 세번째 장편영화 <괴물>로 '천만영화' 감독 대열에 올라선다. 2009년엔 네번째 장편영화 <마더>로 한국영화 첫 미국 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2011년엔 미국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2013년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올라섰고 2017년엔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영화 최대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미합작영화 <옥자>를 내놓는다.
전매특허 봉준호 세계, 상상 속 장면과 현실 속 찰나를 영화로
그가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독특하다. 일단 머릿속에 무엇인가를 필름 한 장면처럼 기록한다. 주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기억했다가 영화에 녹인다.
영화 <마더>의 한 장면도 그렇게 그려졌다.
"1988년 겨울 오대산에 갔어요. 입구에 고속버스 한 대가 주차돼 있는데 아주머니들이 내리지 않고 계속 춤을 추는 거예요. 너무 필을 받으신 거지. 운전기사는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고. 정치된 차가 흔들흔들 할 정도로 격렬하게 춤을 추는데 어린 마음에 충격받았어요. 되게 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자연이 펼쳐져 있는데 왜 내리지 않고 춤을 추고 있을까?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이 됐어요. 한국의 여인들, 어머니들을 찍는다면 꼭 이 장면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발병하기까지 20년이 걸린 것이지요." - 마들연구소 강연 2011.9.21
<괴물>의 경우 봉 감독이 고등학생 시절 집에서 창밖으로 잠실대교를 내다보다가 교각에 뭔가가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것을 본 기억으로부터 발화한 영화다.
또 <옥자>는 이수교차로에서 신호 대기하던 중 고가도로 아래 그늘진 부분를 쳐다보다가 그곳에 시무룩하고 불쌍한 표정의 동물의 있으면 어떨까 상상했던 것을 가지고 있다가 영화로 풀어냈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는 이성재가 거리가 100미터임을 증명하겠다며 두루마리 휴지를 굴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그이 조 감독 시절 겪은 생활고와 연관이 있다.
당시 그는 '무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조감독 때 힘들게 살았어요. 휴지가 100m라고 쓰여 있는데 진짜 100m 맞아? 운동장 트랙 위에 펴볼까? 이런 상상도 했거든요. 그러다보면 내가 봐도 너무 쪼잔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웃기니까 그런 걸 공책에 적게 되죠. 그러다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요." 라고 회상했다.
그 집안 속 기생충, 도대체 뭘 말하나…외신 호평 줄이어
<기생충>을 본 심사위원들과 외신은 그야말로 경쟁적으로 극찬을 이어갔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폐막식 직후 열린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만장일치'로 '기생충'에 상을 줬다며 "'기생충'은 특별한 경험이었고, 다른 영화와 차별화 되는 느낌이었다"고 극찬했다.
영국 매체 스크린데일리(4점 만점에 3.4점), 미국 아이온시네마(5점 만점에 4.1점) 등 높은 평점을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봉준호가 호화로운 볼거리와 풍자적인 서스펜스 드라마로 칸에 귀환했다", BBC는 "'기생충'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부족했던 모든 것이다. 촘촘하고 오락적이며, 완벽한 페이스를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미국 '할리우드 리포터'는 "'기생충'은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다. 2003년 '살인의 추억' 이래 봉 감독의 가장 성숙한,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발언이다"고 평가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상패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한편 황금종려상은 한국영화가 2000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후 19년만에 이룬 쾌거다.
2000년 임권택(83) 감독의 ‘춘향뎐’이 최초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후 2004년 박찬욱(56)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을 수상, 2010년 이창동(65) 감독 '시'가 각본상, 배우 전도연(45)은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 이후 칸 경쟁부문 두번째 노미네이트 만에 수상을 기쁨을 누렸다. <괴물>(2006년 제59회 감독 주간)을 시작으로 <도쿄!>(2008년 제61회 주목할만한 시선) <마더>(2009년 제62회 주목할만한 시선) <옥자>(2017년 경쟁) 이후 5번째 찾은 칸에서 거둔 성과다.
<기생충>은 가족 모두가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박사장네 고액 과외 선생이 되면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다루는 블랙 코미디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룬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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