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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칼럼] 관료는 왜 IT에 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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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정부 PC를 '개방형 OS'로 이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윈도를 버리고 리눅스로 가겠다는 것인데, 현재 주력으로 쓰고 있는 구형 윈도 7이 2020년에 지원이 끊기기 때문에 발등에 불이었을 터다. 과거 XP 지원이 종료되던 시기에도 비슷한 정부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대개 이런 발표는 후속 계약을 위한 협상용으로는 쓰였을지언정 실효는 없었다. 흩뿌려진 정부자금으로 산발적으로 벌어진 '한국형'의 시도들은 결국 조직 내에서도 쓸 만한 수준으로 자라나지는 못했다.


어지간히 윈도에 발목을 잡힌 것은 사실이지만,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로 점철된 철 지난 구조만 봐도 족쇄는 스스로 찼다. 그런데 그 무게가 그리 만만해보이지는 않는다. 장밋빛 공약과 달리 레거시, 그러니까 과거의 유산은 끈적거리고 질기다. 2020년이 다 된 지금에도 1990년대 기술은 사용자에게 들러붙어 있고, 공공은 물론 금융 등 실생활에서 정부 입김이 강한 한국이기에 그 여파는 일반 시민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환영할 만하나, 이번에는 과연 뜻하는 바를 이룰지 걱정이다. 전문성과 무관하게 공무원을 뽑고, 부서를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제너럴리스트 엘리트 양성에 특화된 관료 시스템으로는 IT의 전문성도 리더십도 발휘하기 힘들다. 이를 이끌어줄 만한 인재나 기업은 정부 하청이 아쉬워 나라장터를 기웃거릴 리 없고, 외부 위원회를 꾸려봐야 거마비 정도로 책임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럴 듯한 조언도 실행력도 없이 시장의 현황과는 엇박자인 정책이 만들어지고, 정부에서나 쓰이는 기형적 생태계는 끈질기게 존속되곤 한다. 이 시장이 얼마나 만만해보였으면, 오로지 이 시장만을 노리고 수많은 '한국형' 제품들이 수상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세계적 빈축을 사는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사실 탈윈도란 다른 나라 행정부에서도 가끔 목격되는 유행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탈출 전에 해야 할 상식적인 준비가 먼저다. 운영체제를 바꾸겠다는 선언보다는 앞으로 정부 업무는 웹과 같은 개방형 표준을 기본으로 하겠다와 같은 기초적 준비가 더 급하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지에 대한 구체적 기획안이 공유된다면, 이에 대해 현장의 전문가들도 의견을 낼 수 있다. 오픈소스 혁신과 같은 과정이다. 개방형이 급한 것은 이런 절차와 문화다.

여전히 공무원의 기본 문서도 공공 정보도 웹이 아닌 hwp로 유통된다. 국세청이나 은행만 들어가 봐도 사실 주요 업무는 여전히 공인인증서에 액티브X다. 운영체제만 바꾼다고 자폐적 의존을 일으킨 이런 구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처럼 풀어야 할 것이 많아 걷기도 힘든 험지에서 이륙이 가능할지 걱정스러워지는 법이다. 순수한 웹으로 일을 하고 있다면 사실 운영체제는 선언할 필요도 없다. 윈도든 크롬 OS든 그때그때 고를 수 있을 테니.


IT가 만들어가는 미래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답이 없는 세계다. 나만의 답을 믿고 매진하고, 그 신념에 소비자와 투자자가 달려들어 비로소 정답이 도출되는 세계. 관료가 답을 선언하면 기업이 따르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하지만 20세기적 상식을 전제로 한 각종 정책은 여전하다. 급변하는 21세기, 잘나갔던 20세기의 추억에서 모두들 빠져나오지 못한다. 사실 정부도 정책도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 정부가 선언하면 눈먼 돈 냄새를 맡고 삼류라도 이류라도 우르르 모여드니 그 관행은 좀처럼 버리기 힘든 법인가 보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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