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 가출했는데 취업하려면 '부모 동의' 받아야
부모가 만들어준 통장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지정도 안돼
생계·양육에 학업·취업 부담에 헤어짐 선택…미혼모·미혼부로
[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올해 열여덟 살인 김지영(가명)양은 두 살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다. 잠시나마 아이 아빠와 가정을 꾸리기도 했지만 한부모 가정, 즉 미혼모가 아니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둘은 끝내 이별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미성년자 스스로의 힘만으로 버티기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청소년쉼터는 거주, 양육 등에 대한 지원이 없어 둘은 쉼터를 나와야만 했다. 정부 지원책을 알아보기 위해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여성가족부가 '한부모가족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고, 미성년자 부모의 경우 여기에 포함되는 '청소년 한부모자립지원' 사업을 통해 아동 양육비나 본인의 학습비, 자녀 교육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계ㆍ가사ㆍ양육의 삼중고에 학업ㆍ취업의 부담까지 떠안은 두 사람에게 이 같은 지원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러나 사실혼 관계 등 일체의 혼인 사실 없이 미혼모 혹은 미혼부일 때만 정부 지원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정을 꾸리기로 마음먹은 둘에게 한부모임을 증명해야 하는 조건은 너무나 가혹했다.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김양과 박군은 청소년 부부를 지원하는 기관들을 찾아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민간기구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단체는 원칙적으로 미혼모만을 지원하지만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려는 두 사람의 의지를 높이 평가해 돕기로 했다.
살 곳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국토교통부는 저소득층 가정을 위해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임대주택 공급' 등을 통해 주거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사실혼 관계의 김양과 박군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이들은 한부모가정에 제공되는 주거비 지원 역시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미혼모지원네크워크의 도움으로 'KDB산업은행나눔재단' 등에서 후원을 받아 주거비를 해결했다. 소득이 낮은 가구일수록 주거비가 전체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래서 주거비 지원은 저소득층 가정 유지를 위한 핵심 지원책으로 꼽힌다.
하나의 벽을 넘자 또 다른 벽이 나타났다. 이번엔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이 문제가 됐다. 김양의 친부가 김양의 명의로 만들어놓은 통장의 잔고가 소득으로 잡히며 기초생활수급 선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김양은 친부와 연락을 단절한 지 오래였고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번에도 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중재에 나서 가까스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길고 험난한 과정을 헤쳐나온 김양과 박군이었지만 이들은 결국 현실 앞에 무너졌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지만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소득이 잡히면 지원이 중단됐다. 장기간 일자리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됐고 경제적으로도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다툼이 잦아졌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미성년 부부는 아이가 있어도 성년으로 인정받지 못해 출생신고는 물론 모든 지원과 결정 하나하나에 제약이 따랐다. 둘은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서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렇게 김양은 미혼모가 됐다.
김양의 사례는 상당수 10대 미혼모가 겪는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유미숙 한국미혼모네트워크 팀장은 "아이를 가진 10대 청소년 대부분은 가출 청소년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아이를 낙태하거나 입양 보내기보단 가정을 꾸려나가려는 의지가 있지만, 10대 청소년 부부가 정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 팀장은 "현재는 주민등록증 발급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아이를 낳아도 주민등록증이 없어 육아 지원 키트를 지원받지 못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민법에서는 만 19세가 안 됐어도 결혼을 하면 성인으로 인정해주는데, 아이를 낳은 경우에도 성인으로 인정해주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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