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최후의 과학적 난제인 뇌의 신비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다. 근대 뇌과학의 선구자로서 1906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라몬 이 카할(Ramon y Cajal)은 은염색법을 이용해 뇌가 독립된 신경세포들로 이뤄져 있음을 밝혀냈으며, 신경세포를 정교한 스케치로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카할의 업적은 노벨상을 공동수상한 카밀로 골지(Camillo Golgi)의 염색법과 근대의 정밀한 현미경의 발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전자현미경의 등장으로 신경과학자들은 고해상도로 세포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신경세포들을 연결해 주는 물질이 시냅스에서 만들어지는 나노미터 크기의 소포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뇌과학 분야에서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 활발한 학문 간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신경과학 분야의 최대 학회인 SFN(Society for Neuroscience)에서는 신경생물학자 뿐만이 아니라 물리학, 수학, 컴퓨터공학, 심리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만 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뇌’라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열띤 논의를 벌인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위한 도구가 개발되고, 그 도구를 활용한 연구를 통해서 획기적인 연구성과가 나오는 것이 최근 뇌과학 분야의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2014년에 출범시킨 국가차원의 대형 뇌연구 프로그램인 BRAIN(Brain Research through Advancing Innovative Neurotechnologies) Initiative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가 혁신적인 신경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신경세포를 모니터링하는 기술과 축적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기술개발이 주요 과제로 포함되어 있는 것 또한 신경과학 분야의 발전에 있어 새로운 과학적 분석도구의 개발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최근 높아진 뇌공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에도 불구하고 국내 뇌공학 연구가 크게 활성화 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인데, 이것은 국내 공학 분야의 연구비 지원이 기초연구 보다는 응용연구에 치중되어 있어 기초연구인 뇌공학자들이 연구비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내 뇌공학자들은 선도형 연구보다는 추격형 연구에 비중을 두고 연구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우리 뇌연구가 세계적인 연구그룹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도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알파고 이후 불어온 인공지능 열풍으로 뇌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뇌공학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인공지능이 기존 뇌공학의 범주에서는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에 이 같은 관심에 다소 냉소적인 학자들도 있지만, 대중들의 관심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때에 해외의 주류 연구만 쫓지 않고 새로운 생각과 관점으로 새로운 문제에 도전한다면 대한민국 뇌공학만의 독특한 색깔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닌 뇌공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갈 ‘퍼스트 펭귄’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강지윤 KIST 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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