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낸스 해킹 5개월 준비한 北…가짜면접까지 본 이유[시사쇼]
3년치 넘는 수출액 한번에 탈취
통치자금·핵개발 등에 악용 우려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북한 해커 조직이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를 해킹해 비트코인 약 1만8270개를 빼돌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이 번지고 있다. 지난달 말 드러난 이번 사건은 피해 규모뿐 아니라 수법 면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다. 해커들은 약 5개월에 걸쳐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계획을 세웠고, 가짜 회사를 차려 바이낸스 직원에게 '채용 면접'을 보게 하는 방식으로 내부망에 침투한 것으로 파악됐다.
3년치 넘는 수출액 한번에 탈취한 北 해커…AI도 활용
탈취 규모는 현 시세 기준 약 14억달러(약 1조8700억원)에 이른다. 북한의 지난해 연간 대외 수출액(약 4억달러)의 3년치를 훌쩍 넘는 금액을 단 한 번의 해킹으로 손에 넣은 셈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바이낸스는 이번 사건을 북한 해커들의 소행으로 지목했다.
창펑 자오 바이낸스 창업자는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이 정도로 탈취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일반 금융기관 해킹은 상당히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이 가상자산 탈취를 주요 외화 수입원으로 삼아, 이를 현금화해 신무기 개발 자금으로 쓰고 있다는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바이낸스가 내놓은 사건 경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해커들은 먼저 바이낸스 소속 엔지니어 가운데 이직을 준비하던 한 명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 직원이 구직 플랫폼에서 새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한 뒤, 그럴듯한 유령회사를 세운 것이다.
해커는 자신을 이 회사의 대표라고 소개하고 해당 엔지니어와 채용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 과정에서 "실력을 확인하겠다"며 과제를 내줬는데, 이 과제 파일 안에 악성코드가 숨겨져 있었다.
문제는 엔지니어가 이 과제 프로그램을 하필 회사 업무용 노트북에 설치했다는 점이다. 악성코드는 곧바로 바이낸스 내부 전산망으로 통하는 통로가 됐다. 침투에 성공한 해커들은 내부망을 타고 가상자산 지갑 관련 업무를 맡던 직원들의 컴퓨터까지 장악한 뒤 대량의 코인을 빼내갔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과정에서 북한 해커들이 자체 기술만이 아니라 인공지능(AI) 프로그램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숙련된 해커 조직과 AI 기술이 결합하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코인 탈취가 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안 기술의 빈틈이 아니라 '사람'을 노린 사회공학적 수법에 AI까지 더해지면서, 아무리 방어 체계를 갖춘 대형 거래소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테슬라 코인 보유량보다 더 많아…통치자금·핵개발 악용 우려
이번에 탈취된 비트코인은 약 1만8270개다. 개당 약 7만8500달러의 시세를 적용하면 14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87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보유한 비트코인보다도 7000개가량 많은 양이다.
북한 경제 규모에 비추면 파장은 더 커진다. 북한의 지난해 대외 수출액은 약 4억달러 수준이었다. 이번 탈취액은 그 3년치를 넘어선다. 대북 제재로 정상적인 교역이 막힌 상황에서, 해킹이 사실상 북한의 가장 큰 '수출 산업'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탈취 자금은 자금세탁을 거쳐 여러 경로로 팔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북한 지도부의 통치자금이나 핵·미사일 등 신무기 개발 자금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북한 해커들은 이미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지만, 단일 사건 기준으로 이번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북한 해커들은 현재 탈취한 코인을 여러 지갑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자금세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목적은 이른바 '꼬리 자르기'다. 각국 당국이 자금 흐름을 감시하고 있는 만큼, 출처를 추적할 수 없도록 연결 고리를 끊어내는 작업이다.
동원된 비트코인 지갑만 3000개가 넘고, 다른 코인까지 합치면 1만2000개 이상의 가상자산 지갑이 쓰이고 있다. 해커들은 비트코인을 이더리움 등 다른 코인으로 바꾼 뒤 곧바로 또 다른 코인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정보당국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 이 분야에 가장 능숙한 조직으로는 북한의 해킹 집단 '라자루스'가 꼽힌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코인이 아니라 대외 무역과 생필품 밀수에 쓸 달러다. 그러나 현금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실제로 달러로 바꿀 수 있는 돈은 탈취액의 10%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배경에는 북한 코인을 사들여주던 '돈줄'이 잇따라 끊긴 상황이 있다. 그동안 이란과 중동 지역 무장조직들이 북한이 탈취한 가상자산을 사들여왔지만, 미국과의 전쟁 이후 이들은 여력을 잃었다. 오히려 보유 코인을 내다 팔아 생필품을 사는 처지다.
캄보디아의 대형 범죄단지가 대대적 단속으로 사실상 사라진 것도 타격이다. 이들은 북한 코인을 받아 세탁한 뒤 일반 기업이나 다른 사업체에 넘기는 역할을 해왔다. 중국의 소형 거래소나 범죄조직들이 여전히 북한과 손잡고 있지만, 이들의 자금력으로는 이만한 거액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어렵다. 도우미들이 사라지자 북한은 눈에 띄는 방식으로 세탁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강력 비난, 중국은 "확인 못 해"…엇갈린 셈법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미국과 중국의 태도는 크게 엇갈린다. 미국은 FBI를 중심으로 북한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중국은 "확인하지 못했다"며 사실상 북한을 두둔하는 모습이다.
바이낸스가 흔히 중국계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중국이 자국 기업의 피해에도 북한 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하지만 바이낸스는 엄밀히 중국 기업이 아니다. 창업자 자오창펑은 화교 출신이지만 캐나다 국적자다. 사업 초반 중국 정부와 관계를 맺거나 중국인 직원이 많아 중국 기업 이미지가 강했을 뿐, 현재 바이낸스는 특정 국가에 본사를 두지 않은 다국적 기업임을 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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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가상자산 규제도 변수다. 중국은 자국 내 가상자산 거래를 공식적으로 전면 금지하고 있다. 기존 보유는 허용되지만 공식 거래는 불가능하고, 개인 간 장외거래만 묵인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FBI 발표에 대해 중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입장을 내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외교적 계산도 깔려 있다.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적극적인 친중 행보를 보이고 있는 만큼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감싸려는 유인이 있다. 더 큰 부담은 문제가 커질수록 중국 범죄조직의 자금세탁 개입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이다. 캠보디아 범죄단지 역시 중국 범죄조직과 연계돼 있었던 만큼, 사안이 확대되면 미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도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하다. 중국이 언급을 최대한 피하며 북한을 두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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