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호출 한 번에 국·과장부터 실무진까지 우르르 상경하는 시스템을 방치한 채 몸만 세종시로 내려보낸다면, KTX 안에서 노트북만 두드리는 '출장형 관료'만 5460명 더 늘어날 뿐입니다." 얼마 전 만난 세종시의 한 사무관은 한숨을 쏟아냈다. 정부가 중앙행정기관 31곳, 공무원 5460명을 세종시로 추가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뒤였다.
이번 행정기관 이전 계획 발표를 지켜보며 다른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불과 며칠 전 행정안전부는 폐쇄망 내부에서 인공지능(AI)이 웹을 검색하고 공문서 초안까지 작성하는 '온AI' 확대를 홍보했다. 정부 말처럼 AI가 일하는 방식을 급격히 바꾸고 있지만, 공무원들이 일하는 방식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과 책상을 물리적으로 옮기는 데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조직문화가 그대로라면 행정의 비효율은 사라지지 않는다. AI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클라우드로 문서를 공유하는 시대에도 공무원들은 여전히 KTX에 몸을 싣고 서울과 세종을 오간다. 국회 일정만 잡히면 세종의 실무진들이 여의도 의원회관 복도와 국회 인근 카페를 전전하며 밤샘 대기조로 뛰는 진풍경은 10년 넘게 그대로다. 이른바 '길국장', '카톡 과장'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최근 열린 공청회에서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대정부 질의 때 예상 질문을 받기까지 실무진이 밤새 대기하는 관행이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면 보고를 최소화하고 전자문서와 화상회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정착시켜야 한다. 국회 대응 과정에서도 실무진의 불필요한 상경과 반복적인 대기를 줄일 디지털 협업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부처별 업무 특성에 따라 서울과 세종의 기능을 합리적으로 나눠야 한다. 사람을 옮기는 하드웨어 이전이 필요하다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소프트웨어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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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는 청사를 옮긴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정착하고, 행정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며, 국민이 그 변화를 체감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AI가 공무원의 업무를 돕는 시대에도 정부가 여전히 출장 가방부터 싸게 한다면 기술 혁신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정부가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사람의 위치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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