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 4·16기억저장소장 "함께 애도해 준 분들에 대한 인정"
시민·유가족이 쌓고 민간이 신청…'삶의 기억'으로 차별화
전문 인력·서고·외국어 서비스는 과제로 남아

"재난의 기록이 아니다. 그 이후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던 기록이다."


국민 추모 응원 기록/4·16기억저장소.

국민 추모 응원 기록/4·16기억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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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 4·16기억저장소 소장이 세계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 '단원고 4·16 아카이브'가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아태) 지역목록에 올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 지역위원회(MOWCAP)는 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가기록원에서 제11차 총회를 열고 이 유산의 등재를 결정했다.

아카이브에 포함된 기록은 23만522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22만8200건은 시청각 자료다. 재난 현장 기록, 희생자 개인 생애사 기록, 생존자 집단 합숙 기록, 단원고 교실 기록, 교실존치 활동 기록, 구술기록, 국민 추모·응원 기록으로 구분된다. 시청각 외 자료는 문서 5887건, 도서·간행물 204권, 구술 929건이다.


등재 현장에서 만난 이 소장은 "'비극'을 담은 대부분의 재난 기록과 달리, '삶의 기억'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살았던 흔적과 이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마음이 담겼다는 설명이다.

그는 신청서에서 이 차별성을 MOWCAP이 요구하는 세 항목으로 풀어냈다. 역사적 중요성에서는 정치적 갈등의 도구가 아니라 슬픔을 차분히 직면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내세웠다. 형태·양식에서는 일기, 편지, 사진, 학습 자료, 포스트잇, 엽서처럼 시민이 일상에서 쓰던 형식 그대로의 기록이라는 점을 짚었다. 사회적·공동체적·정신적 중요성에서는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약속이 공감의 언어가 되고, 그 행위가 아카이빙과 시민운동으로 이어진 점을 부각했다. 실제로 단원고 교실 존치 청원에는 국민 서명 2만8500통 이상이 모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 지역위원회 제11차 총회 현장/이종길 기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 지역위원회 제11차 총회 현장/이종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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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기록에서 신청 대상을 가린 기준은 분명했다. '그날의 진실과 그날 이후의 사람들'이 남아 있는지였다. 이 소장은 선별 때마다 "이 기록이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어떻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 결과 범위는 참사의 순간에 머물지 않고 생존자의 치유와 시민들의 기억 활동까지 확대됐다.


이처럼 폭넓은 기록의 출발점에는 시민과 유가족이 있었다. 참사 직후 시민기록위원회와 시민네트워크, 추모기록보존 자원봉사단이 현장과 전국의 추모 기록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가족은 사고 해역에서 수습된 유품과 기록을 수거하고, 다른 유가족의 동의를 끌어내 생전 개인기록을 모았다. 2014년 7월에는 시민단체들이 가족대책위원회에 합류해 아카이빙한 기록을 기증했다. 이 소장은 "기증에 동의해 주신 유가족분들 한 분 한 분의 결단과 현장 폐기물 공간에 방치돼 있던 기록을 운영위원 어머니들이 직접 수집·정리한 노력으로 아카이브가 세워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단원고 교실 존치 기록/4·16기억저장소.

단원고 교실 존치 기록/4·16기억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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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으는 일 못지않게 지키는 일도 중요했다. 2017년 세월호 선체를 인양한 뒤 목포신항에서 뻘을 정리하다 책과 노트 같은 종이 기록이 나왔다. 기록에는 곰팡이가 슬고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 4·16기억저장소는 냉동고를 사 기록을 얼려 보관한 뒤 전문 업체에 복원을 맡겼다. 사전에 전국을 다니며 보존과 복원 자문을 구해 둔 덕에 가능했다고 이 소장은 말했다.


현재 기록물은 경기도교육청 4·16생명안전교육원 기억관에 보관돼 있다. 항온항습과 도난·화재 방지 기능을 갖춘 서고다. 국가기록물로 지정된 기록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2년에 한 번 이상 보존 상태를 점검받는다. 단원고 4·16 아카이브는 매번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원본의 출처는 기증 동의서로 확인된다. 기증 때 활용 동의서와 함께 소유권과 활용 권한을 넘겨받았다. 모든 기록에는 생산자와 기증 경위가 서면으로 남아 있다. 이 소장은 아태 지역목록 신청서에 "원본 없이 사본만 수집된 사례는 없으며,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손상이나 누락,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변경·수정 사례도 없었다"고 적었다.


재난 현장 기록/4·16기억저장소.

재난 현장 기록/4·16기억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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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거는 심사 단계에서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여졌다. 별도 질문이나 보완 요청도 없었다. 이 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이어진 공개 의견 접수와 이의 제기 기간에 들어온 의견이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기록원이 이 컬렉션을 '당사자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기록 수집·보존·활용의 모범 사례'로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심사를 통과한 신청서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졌다. 사비로 예산을 충당했고, 국문·영문 작성은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로 해결했다. 등재추진위원회는 따로 구성하지 않았다. 이 소장은 "국가유산청이 국내 심의 통과와 등재 과정에서 여러 방면으로 지원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지성 4·16기억저장소 소장/이종길 기자.

이지성 4·16기억저장소 소장/이종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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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유가족이 마음을 모아 쌓은 기록은 등재되기도 전에 교육과 전시에 다양하게 활용됐다. 이 소장은 "개인의 기억이 집합의 기억으로, 다시 사회적 의식과 국가적 기억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기록 안에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의 기억이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향한 노력으로 이어지도록 끝까지 힘쓰겠다"라고도 말했다.


다짐 앞에는 해결할 과제들이 있다. 가장 시급한 건 외국어 서비스다. 아직 홈페이지가 외국어 검색과 번역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운영할 계획이지만 예산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희생자 개인 생애사 기록/4·16기억저장소.

희생자 개인 생애사 기록/4·16기억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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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과 서고도 숙제다. 현재 기록 관리는 소속 아키비스트와 실무교육을 이수한 유가족, 자원봉사자가 맡고 있다. 이 소장은 "기록물 23만5220건을 장기적으로 지키려면 기록연구사와 학예사 같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산시 지원으로 마련한 외부 서고 세 곳은 가건물이다. 세계기록 목록에 포함하지 못한 기록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공간이 절실하다.


디지털화는 국제표준에 준해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훼손이 진행 중이거나 보존성이 취약한 기록부터 점검해 수리·복원하고, 사진과 영상 같은 디지털 원본은 서버에 이중으로 백업한다. 이 소장은 "원활한 운영을 위해 홈페이지 개편과 기록물 시스템 관리에도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4·16기억저장소는 아태 지역목록을 넘어 국제목록 확장도 준비한다. 생존자의 회복을 위한 기록을 추가하기 위해 지금도 수집을 이어가고 있다. 기증은 협약과 인수에서 보존까지 국가 표준에 준하는 절차로 받는다. 이번 신청 대상은 완결된 사업의 기록물 가운데 보존 처리와 등록을 마친 항목으로 추렸다.


생존자 집단 합숙 기록/4·16기억저장소.

생존자 집단 합숙 기록/4·16기억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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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4·16 아카이브는 재난 기록으로는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록물'에 이어 아태 지역목록에 오른 두 번째 사례다. 이 소장은 태안이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바다를 되살린 극복의 기록이라면, 4·16 아카이브는 시민과 유가족이 애도하고 치유해 온 기억운동의 기록이라고 비교했다. 재난의 순간이 아니라 그 뒤에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했는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방향이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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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등재의 의미를 함께 애도한 시민에게서 찾았다. "저희 아이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함께 애도해 준 세계 모든 시민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저는 기록전문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엄마입니다. 기억이 곧 안전이라고 저희는 믿습니다. 4·16기억저장소는 계속하여 기억하고, 기록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자카르타=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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