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없는 지구
석유가 100년치 남아 있다면 앞으로 100년은 안심해도 될까. 40년간 자원개발 현장을 누빈 양수영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땅속에 묻힌 석유를 모두 꺼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 유전의 석유 회수율은 대체로 20~40%에 그친다. 한때 아시아 최대 산유국이던 인도네시아는 2004년 석유 순수입국으로 돌아섰다. 저자는 12개국의 에너지 수급 구조를 분석하며 석유가 완전히 고갈되기 전에 공급 부족이 먼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기차가 늘어나도 석유 소비가 쉽게 줄지 않는 이유, 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이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했던 배경, 수소 수출을 꿈꾸는 호주의 기술적 한계 등을 짚는다. 자동차는 한번 팔리면 10년 이상 도로를 달리고, 항공기와 선박, 산업용 고온 공정은 전기로 대체하기 어렵다. 에너지 공급이 부족해지면 돈이 있어도 석유를 구하지 못하고, 의료와 농업 등 필수 분야에 에너지를 우선 배분해야 할 수도 있다. 기술 혁신이 자원의 유한성까지 해결할 것이라는 낙관에 균열을 내는 책이다. (양수영 지음ㅣ알에이치코리아)
더 기버: 척 피니
1996년 세계적인 면세기업 DFS의 매각 계약이 성사됐다. 42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거래 현장에서 창업자 척 피니의 손목에 채워진 것은 값싼 검정 플라스틱 시계였다.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그는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고 검소한 생활을 고집했다. 한국전쟁 참전 뒤 제대군인 장학금으로 코넬대에 진학한 피니는 샌드위치 장사로 생활비를 벌던 청년이었다. 1964년 해외여행 자유화에 나선 일본인 관광객들의 구매력을 간파하고 하와이와 홍콩을 거점으로 면세 제국을 일궜다.
그의 진짜 야심은 부자가 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53세에 거의 전 재산을 자선재단에 넘겼고, 35년에 걸쳐 약 10조원을 기부했다. 기부 사실을 철저히 숨긴 탓에 포브스가 그를 미국 23위 부자로 선정했을 때는 이미 재산 대부분을 내놓은 뒤였다. 대학과 의료기관, 연구소에 거액을 지원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건 기념비를 원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언론인 코너 오클리어리는 사업적 성공과 동업자들과의 갈등, 비밀스러운 기부 과정을 추적한다. 부를 얼마나 축적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잘 내려놓았는지로 한 인간의 삶을 다시 읽게 한다. (코너 오클리어리 지음ㅣ김정아 옮김ㅣ포레스트북스)
더 머니이슈 THE MONEY ISSUE Vol.1 1인분의 삶
1인 가구의 생활비는 4인 가구의 4분의 1이면 충분할까. 연봉 1억원을 받으면 행복해질까. 야근을 마치고 택시를 타는 일이 낭비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같은 선택을 반복할까. 금융 플랫폼 토스가 창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 머니이슈'는 돈의 문제를 삶의 문제로 확장한다. 창간호의 주제는 '1인분의 삶'.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자산 관리부터 노동과 행복, 소비와 취향까지 27가지 질문을 따라간다.
경제 미디어 '어피티'는 돈 관리의 원칙이 실제 생활에서 무너지는 이유를 살피고, 트렌드 미디어 '캐릿'은 2030세대의 자산 관리 방식을 분석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퇴사를 선택한 경험을 들려주고, 천문학자 이주원은 광활한 우주에서 한 사람의 삶이 지닌 의미를 이야기한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것이 행복을 늘리는지, 인공지능(AI)이 노동을 대신하면 인간은 무엇을 하게 될지도 묻는다. 통장 잔고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 돈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아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흐른다. (토스 엮음ㅣ비바리퍼블리카)
더 넥스트 달러
어떤 나라는 돈을 아무리 찍어도 세계가 사들이고, 어떤 나라는 조금만 풀어도 환율이 폭등한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경제사 연구자 홍익희는 돈의 본질을 국가와 시장이 공유하는 신뢰에서 찾는다. 1971년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단한 미국은 실물 담보 없이도 세계의 기축통화를 유지했다. 석유와 원자재 거래, 국제 결제망이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부채가 불어나고 러시아의 달러 자산 동결을 목격한 국가들이 금과 대체 결제망으로 눈을 돌리면서 그 질서에도 균열이 생겼다.
저자는 달러의 몰락보다 달러의 변신에 주목한다. 달러 가치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망을 우회하는 새로운 화폐처럼 보이지만, 발행사가 미국 국채를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면서 오히려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비트코인의 발행량 2100만개 제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감시 가능성, 브릭스 국가들의 탈달러 움직임도 함께 분석한다. 달러를 대신할 단 하나의 화폐가 등장하기보다 여러 통화와 결제망이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에 앞서 그 가치가 무엇으로 유지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익희 지음ㅣ김영사)
슈거 제너레이션
2039년, 설탕이 석유를 대신하는 연료가 됐다.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자 각국은 사탕수수에 눈을 돌렸지만, 농장에 전염병이 퍼지면서 설탕값마저 치솟았다. 사람들은 값싼 대체 감미료를 먹기 시작했고, 몇 년 뒤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체내에 축적된 감미료가 생식 호르몬을 교란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가임기 여성 3명 중 1명이 배란 장애를 겪자 국가는 여학생들의 난자까지 관리하기 시작한다. 기후변화와 식량안보를 연구한 박소민이 자신의 투병 경험을 더해 쓴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재난의 중심에는 한집에 사는 세 모녀가 있다. 열여섯 살에 림프종을 앓은 뒤 월경이 멎은 이진은 난임센터에서 일한다. 항암 치료 이후 감미료의 단내조차 견디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감미료 식품을 판매하는 마트를 운영한다. 동생 이솔은 육체를 버리고 가상 세계 '홈랜드'로 떠나려 한다. 출산율을 지키겠다며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국가와 생존을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가족의 갈등이 맞물린다. 바나나가 가장 달콤해지는 순간부터 썩어가기 시작한다는 소설 첫머리의 묘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다. 풍요를 위해 만들어낸 기술이 인간의 몸을 파괴하는 역설을 그린다. (박소민 지음ㅣ허블)
섬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단 두 줄의 시로 수많은 독자의 마음에 머문 정현종. 그의 대표 시편을 모은 시선집 '섬'이 출간됐다. 1965년 등단 이후 반세기 넘게 써온 시 가운데 '방문객',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등을 골랐다.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과 만년필로 쓴 시편도 함께 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사물에 깃든 생명, 고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을 길어 올린 시적 여정을 한 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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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에는 도토리 한 알이 떨어지는 일도 예사롭지 않다. '안부'에서 도토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굴러가자 그는 나무의 안부가 궁금해 뒤를 돌아본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에서는 누군가 앉아 차를 마시거나 잡담을 나누는 평범한 순간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라본다. 문학평론가 오생근은 발문에서 그의 시가 개인적 고통과 시련을 딛고 타인의 영혼에 스며드는 위안을 지향해왔다고 평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선언 없이, 무심히 지나친 사물과 사람에게 다시 눈길을 돌리게 하는 것이 정현종 시의 힘이다. 오래된 시들이 세월을 건너 여전히 새롭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현종 지음ㅣ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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