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걸그룹 '에이아이돌' 기획자 인터뷰
브랜드 숨기고 팬덤 공략…역발상 마케팅 적중
실제 연습생 기용해 음악방송·챌린지 전개
저관여 가전 한계 뚫고 실적 35% 성장

5인조 신인 걸그룹이 칼군무를 선보인다. 음악방송 MC들이 소개하고 멜론과 스포티파이에도 음원이 등록됐다. 소속사는 SM도 하이브도 아닌 LG전자다. 지난 8월 선보인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이야기다.


에이아이돌은 가상 아이돌이 아닌 실제 연습생 데뷔조 출신 멤버들로 구성됐다. 데뷔곡은 '아이워시(I WASH)'. 올인원 세탁건조기 'AI 워시콤보'의 5가지 핵심 기능을 멤버별 캐릭터로 구현했다.

가전제품 광고에서 흔히 쓰이는 기술력이나 스펙 나열 대신 아이돌 그룹 제작을 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달 29일 LG서울역빌딩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의 안태현 팀장과 황수빈 선임, 이강일 HSAD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LG전자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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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광고는 넘기기 십상"…브랜드 가린 역발상

기획의 시작은 세탁건조기라는 제품의 특성에 있었다. 안 팀장은 "세탁건조기는 고장이 나거나 이사, 결혼 등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평소 관심을 두지 않는 저관여 제품"이라며 "콘텐츠가 범람하는 환경에서 기존처럼 제품 특장점만 강조하면 소비자는 쉽게 스킵(건너뛰기)을 누른다"고 운을 뗐다.


소비자의 손가락을 멈추게 할 묘수가 필요했다. 회의 끝에 나온 아이디어는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K팝 문화 속으로의 침투였다. 접근법부터 기존 가전 광고와 달랐다. 캠페인 초반 'LG'라는 브랜드를 철저히 감췄다. 'AWC'라는 가상의 기획사 계정을 개설하고 멤버 프로필과 연습 영상을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티징 방식을 취했다. AWC는 AI 워시콤보의 약자다.

황 선임은 "기존 광고는 브랜드명과 제품 스펙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지만, 이번 캠페인은 고객이 기능보다 호기심을 먼저 갖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브랜드리스(Brand-less)로 접근한 점이 기존과 가장 다른 문법"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전체 캠페인 일정의 3분의 1가량 브랜드를 가리고 진행하는 것은 통상적인 광고 집행에서 결정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며 "광고주 측에서 적극적으로 브랜드를 가리도록 독려해 소비자가 콘텐츠 자체에 먼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전했다.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기획자들이 지난달 29일 LG서울역빌딩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황수빈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선임, 안태현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팀장, 이강일 HSAD 팀장. LG전자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기획자들이 지난달 29일 LG서울역빌딩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황수빈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선임, 안태현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팀장, 이강일 HSAD 팀장.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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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감독 섭외부터 오디션까지…엔터테인먼트 제작 문법 차용

콘셉트만 아이돌 흉내를 낸 게 아니었다. 제작 과정도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작업 방식을 따랐다. 전문 안무가를 섭외해 안무를 구성하고, K팝 뮤직비디오 감독과 음원 믹싱 전문가를 투입했다. 멤버 선발 역시 오디션을 보듯 진행했다. 광고업계와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작업 방식 차이로 인한 조율 과정도 거쳤다. 서로 사용하는 실무 언어가 달라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이 팀장은 "스토리보드를 준비할 때 광고 쪽에서 기대하는 세부 콘티와 달리 뮤직비디오 감독님은 그림 한 장에 스무 줄 정도의 설명을 주는 방식이었다"며 "스태프 구성부터 촬영 방식까지 서로 다른 업무 언어를 맞추는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초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음원 선공개 이후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진행된 안무 챌린지에는 가수 최예나, 코미디언 이선민, 안무가 효진초이 등이 참여했다. 뮤직비디오 등 관련 영상의 누적 조회 수는 3200만 회를 돌파했다. 8월 말 정식 광고 영상이 공개되면서 세탁건조기 광고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서 반전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과 올인원 세탁건조기 ‘AI 워시콤보’의 모습. LG전자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과 올인원 세탁건조기 ‘AI 워시콤보’의 모습.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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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방송 출연시켜 달라" 요청에…실제 방송 편성도

프로젝트는 소비자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안 팀장은 "처음부터 음악방송 출연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며 "댓글을 통해 음악방송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이어지자 실무진과 대행사가 논의해 방송에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방송 심의 규정상 브랜드명이 포함된 음원을 정식 무대에서 부르기는 어려웠다. 이에 음악방송 중간광고 직전 MC들이 "SNS 장안의 화제인 신인 에이아이돌을 소개한다"고 멘트를 한 뒤 뮤직비디오 광고가 송출되는 형태를 구성했다.


황 선임은 "고객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면서 양방향 소통이라는 인식을 준 측면이 있다"며 "세탁기 종료음으로 음원을 넣어달라는 요청에 맞춰 LG 씽큐 앱을 통해 다운로드할 수 있는 콘텐츠 작업도 진행했다"고 말했다.


실시간 대응이 이어지면서 제작진의 업무 강도도 높아졌다. 이 팀장은 "통상 광고 캠페인은 초반 세팅 후 매체 집행 관리에 집중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7월부터 계속 콘텐츠를 제작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호흡이 빨랐다"며 "실제 준비했던 결과물 자체가 평소의 3배에 달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기획자들이 지난달 29일 LG서울역빌딩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황수빈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선임, 안태현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팀장, 이강일 HSAD 팀장. LG전자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기획자들이 지난달 29일 LG서울역빌딩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황수빈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선임, 안태현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팀장, 이강일 HSAD 팀장.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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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67% "AI 적용제품 구분 어려워"…기능별 멤버 매칭

LG전자가 멤버 5명에게 '올인원 대용량(이연)', 'AI 타임센싱(모아)', 'AI 세탁·건조(성현)', '미니멀 플랫 디자인(희재)', '미니워시(수아)'라는 캐릭터를 각각 매칭한 데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황 선임은 "한국소비자원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가전 구매 시 AI 기능이 중요하다고 인지하면서도,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67%에 달했다"며 "단순히 기능이 좋다고 강조하기보다 소비자가 관심을 갖는 문화를 통해 다가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돌 그룹 내 포지션처럼 세탁기 특장점을 멤버별 역할과 매칭해 기억하기 쉽게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캠페인이 진행된 지난 7~9월 AI 워시콤보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하며 유의미한 성장세를 보였다.


안 팀장은 "가전의 AI 기능은 실제 생활에서 체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자연스러운 콘텐츠를 통해 전달하면서 AI에 대한 인식 제고와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에이아이돌 광고 썸네일 워시콤보 이미지. LG전자

에이아이돌 광고 썸네일 워시콤보 이미지.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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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브랜드 이미지…후속 콘텐츠 이어갈 계획

LG전자의 에이아이돌은 조직 안팎에서 보수적이고 진중했던 브랜드 이미지에 유쾌하고 젊은 감각을 더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경영진 사이에서는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 "다른 그룹도 또 만드는 것인가" 등 긍정적인 반응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는 에이아이돌의 활동을 단발성으로 끝내지 않고 관련 콘텐츠를 이어갈 예정이다. 황 선임은 "소녀시대 유리 등 선배 아이돌과의 만남을 주제로 한 유튜브 콘텐츠 출연과 고객 질문에 답하는 Q&A 콘텐츠 등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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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마케팅'은 최근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오비맥주는 최근 무알코올 음료 카스 올제로의 특징을 담은 4인조 걸그룹 '3pm'을 공개했으며, 삼성증권은 금융과 투자의 메시지를 친숙하게 전달하기 위해 4인조 걸그룹 '루미나'를 선보였다. 다만 이들은 AI로 제작한 가상 아이돌로서, 실존 인물들로 구성된 '에이아이돌'과는 차이가 있다.


LG전자는 경쟁사들의 유사 마케팅 시도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 팀장은 "따라서 하는 것은 얼마든지 더 따라서 하더라도, 저희는 그것보다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고객이 흥미를 느끼는 콘텐츠 중심의 소통을 지속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기획자들이 지난달 29일 LG서울역빌딩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태현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팀장, 김경미 책임, 황수빈 선임, 이강일 HSAD 팀장. LG전자

LG전자의 5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에이아이돌(AI-DOL)’ 기획자들이 지난달 29일 LG서울역빌딩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태현 LG전자 커뮤니케이션2팀 팀장, 김경미 책임, 황수빈 선임, 이강일 HSAD 팀장.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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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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