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마도 5·6호선서 목간 30점 발견…1·5호선은 1208년 동일 선단 추정
경상도 출발 조운선 흔적 첫 확인…조세·토지 제도 담긴 기록도 나와
800여 년 전, 고려 수도 개경으로 향하던 두 척의 배가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수백 년 뒤 두 배는 250m 떨어진 해저에서 발견됐다. 이들을 연결한 단서는 나무 꼬리표에 남은 손글씨였다. 화물의 수취인과 필적이 거의 일치하는 목간(木簡)이 각각의 난파선에서 나온 것이다.
4일 충남 태안 마도해역 수중발굴 조사선에서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잠수사들이 이날 바닷속에서 인양한 도자기들을 내려놓고 있다. 이날 출수된 도자기는 마도 5·6호선 유적과는 별개의 유물이다. 김희윤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4일 충남 태안에서 열린 수중발굴조사 성과 언론공개회에서 고려시대 난파선 '마도 5호선'의 실체를 확인하고, 인근 해역에서 '마도 6호선'의 흔적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목간은 5호선 26점, 6호선 4점 등 모두 30점이다. 연구진은 마도 1·5호선이 1208년 봄 같은 선단을 이뤄 항해하다 침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마도 5호선은 지난해 음파탐사에서 청자 다발과 선체 조각 등이 발견되면서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 올해 정밀 발굴에서는 목간 26점을 비롯해 닻돌과 밧줄, 화물 받침목, 볏섬, 선상 생활용 청동호 등 유물 54점이 나왔다.
목간에는 '정묘년(丁卯年)'과 '정묘 12월(丁卯十二月)'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연구진은 출수 유기물 5점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와 청자 제작 시기를 종합해 정묘년을 1207년으로 판단했다. 고려시대에는 가을에 거둔 곡물을 겨울까지 조창에 모아뒀다가 이듬해 봄 개경으로 운송했다. 이를 근거로 마도 5호선의 항해 시기를 1208년 봄으로 추정했다.
두 배의 관계를 밝혀낸 결정적인 단서는 목간의 필적이었다. 마도 5호선의 20번 목간에는 고려시대 안로현(현재 전남 영암군 금정면 일대)에서 개경의 송득덕에게 보내는 화물 정보가 적혀 있다. 2009년 발굴된 마도 1호선의 34번 목간과 수취인은 물론 글씨의 형태까지 거의 같았다.
연구진은 처음에는 마도 1호선에서 떨어져 나온 화물이 250m 떨어진 지점에 쌓였을 가능성도 검토했다. 그러나 두 지점에서 발견된 선체 외판재의 두께와 가공 방식이 서로 달랐다. 마도 1호선은 두꺼운 통나무를 비교적 적게 가공한 반면, 5호선은 목재를 판재 형태로 다듬어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두 선박이 같은 선단에 속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4일 충남 태안 태안수중유산박물관에 공개된 마도 6호선 추정 유적의 출수 목간. 경남 사천을 뜻하는 '사주(泗州)'와 진주 일대의 옛 지명인 '반성(班城)' 등이 기록돼 있어 고려시대 경상도 지역의 조세 운송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원본보기 아이콘문경호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마도 5호선이 발견되면서 영암의 장흥창 일대에서 선단이 출발할 때 한 척이 아니라 최소한 두 척 이상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도 6호선에서는 경상도 출발 조운선의 흔적이 처음 확인됐다. 마도 2호선에서 동쪽으로 약 110m 떨어진 해역에서 목간 4점을 비롯해 볏섬과 화물 받침목, 도자기 등 고려시대 유물 20여 점이 발견됐다. 목간에는 '사주(泗州)'와 '반성(班城)'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었다. 각각 지금의 경남 사천시와 진주시 반성면 일대다.
마도 1·5호선은 약 25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으나 수취인과 필적이 일치하는 목간이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선체 외판재의 구조는 서로 달라 별개의 선박으로 판단, 연구진은 같은 선단에 속해 항해하다 함께 침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원본보기 아이콘연구진은 사천과 진주 일대에서 거둔 곡물을 사천의 조창인 통양창에 모아 개경으로 운송하던 배가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태안해역에서 확인된 고려시대 화물선은 목간에 기록된 발송지가 모두 전라도 지역이었다. 이번 발견으로 경상도 조운선의 운항 경로를 추적할 단서가 확보됐다.
목간에는 당시 조세와 재산 관계를 보여주는 기록도 담겨 있었다. 벼와 현미, 백미, 콩 등 곡물의 종류와 수량은 물론 수취인의 신분까지 적혀 있었다. 특히 토지에서 조세를 거둘 권리인 수조권과 관련된 '전주(田主)' 표기가 처음 확인됐다. 개경에 거주하는 지방 출신 인물을 가리키는 '재경(在京)'과 고위 관료의 부인을 화물 수취인으로 기록한 목간도 나왔다.
문 교수는 "태안선부터 마도 3호선까지 목간이 계속 발견됐지만 전주라는 글자가 쓰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고려시대 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연구소 수중발굴 조사선에서는 잠수사들이 실제 수중조사를 벌이는 현장도 공개됐다. 장비를 갖춘 잠수사들이 태안 앞바다로 들어가 해저 유물을 탐색한 뒤 도자기들을 인양했다. 이 가운데는 조선시대 궁중 물품 공급을 담당하던 내섬시(內贍寺)를 가리키는 '내섬(內贍)' 명문이 새겨진 그릇도 포함됐다. 이날 인양된 도자기는 마도 5·6호선의 화물과는 별개다.
이날 인양한 도자기는 마도 5·6호선의 유물과 별개. 조선시대 궁중 물품 공급 관청인 내섬시(內贍寺)를 가리키는 '내섬(內贍)' 명문이 찍힌 분청사기 등 확인. 당시 궁중 공급용 도자기의 제작·유통 체계를 보여준다. 김희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조사선에서 만난 홍광희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수중발굴연구사는 해저에 묻힌 선체를 찾는 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음파로 해저 지층을 조사하더라도 선체와 주변 지층을 구분하기 쉽지 않아 탐사 경로를 촘촘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무인수상정에 여러 탐사장비를 결합해 해저면과 지층 내부의 동시 조사 기술을 통해 발굴작업을 확대할 예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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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마도해역은 고려·조선시대 남부 지방의 곡물과 특산품을 수도로 운송하던 주요 항로였다. 거센 조류와 암초 때문에 항해가 어려워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렸다. 2007년 고려청자 약 2만3000점이 실린 태안선이 발견된 이후 마도 1~4호선이 차례로 확인됐다. 연구소는 내년에도 마도 5호선의 미조사 구역을 추가 발굴하고, 6호선의 선체를 확인하기 위한 정밀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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